완행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권말선
나는
떠날 수 있을까 -
완행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햇살 얼굴가득 받으며
햇살에 취해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가...
낯설은 이름의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
'화산리'라는 이름의 동네에도 알고보면
나같은 모양을 한 사람들이 살 거라고
그들 모습도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이 하나 안은 중년부부 좁은 길로 멀어지는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다시 완행버스는 움직이고
'화산리'에는 화산이 있는 걸까
옛날에 화산이 분출한 곳이었을까?
아까내린 중년부부는 늦게 아이를 낳았나보다.
남자는 키가 크고 더벅머리였으나 온순해 보였고
여자는 뚱뚱하고 이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내려요"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 있었지.
작은 아이를 걸쳐 안은 남자와 무거운 짐을 들은 여자는
서로 일상의 얘기를 나누는 듯 남자가 고개를 숙여
여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여자는 속닥이다 이내 웃고...
더없이 정다워 보였고 화려하지 않았으나 아름다왔다, 고
완행버스 달리는 동안 부러움을 담아 회상하면서
또 떠나는 길.
소음과 공해와 넘쳐나는 간판들을 지나 저기
이름을 대면 당신도 아실 곳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며 거치는 기차역.
언젠가 친구를 찾아 가기 위해 왔던 혹은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적 남자를 따라 밤기차를 타보기도 했던
어쩌면 기차역의 안내방송 목소리는 저리도
독특한 음색으로 울리는지 어느날 생각했던
기차역,
기차역이다.
생활을 접고
삶을 접고
당신을 접고
사연과 미래와 기쁨과 상처를 접고...
어쩌면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보기도 하겠지
점점 짙어지는 어둠따라 두려움도 커지겠지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돌아가면 누군가는 쓸쓸히 웃으며 맞아주겠지
TV광고에 나오는 그림같은 풍경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꽃달린 어여쁜 밀짚모자 쓰고
햇살을 받은 물결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 위를
노 저어 주는 사공의 수고 아랑곳없이
행복한 미소지으며 잠깐 나들이가듯
떠나기를 꿈 꿔 본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이렇게 될 거라고 늘 가슴속으로 중얼거렸던
떠남.
말할 수 없는 피로감.
누가 내게 있어서
넓은 팔 벌려 안아주며 맘껏 울라 할 것이랴
나도 누구에게 그렇게 못 해 준 것을.
말할 수 없는 피로감.
이제 저 기차에 오르면
나는 당신의 기억에 남지 않으리
이미 오래전에 했어야 했던 일,
떠남.
기차역에는 사람들이 많이도 오고 간다
나도 여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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