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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다 던져라, 이기리라

by 자주통일연구소 2026. 8. 29.

다 던져라, 이기리라

권말선


캠프 험프리스 담장 밖
언덕 위에 늘어선 사과나무
원래 살던 곳은 저 담장 안
너른 들판이었다네
끝없이 넓고 푸르던 땅
사람들이 울렁둘렁 마을을 이뤄
벼와 꽃과 소와 더불어 살던 곳
그러나 저 점령군 떼로 몰려와
모두를 몰아내고 들앉았을 때
사과나무 행렬도 밀려 밀려났지만
언젠가는 저 담장 허물리라
저 도적들 다 쫓아내리라
날마다 캠프 험프리스 향해
언제고 올 그날을 바라고 바랐다네

그런 어느 날 사과나무는 보았다네
청년들, 겨우 몇 명의 청년들이
저 담장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을
반도체산단 어깃장도 백린누출도
주한미군의 그 어떤 주권침해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외치며
저 담장, 저 아스팔트, 저 철조망에
그 작은 체구 폭탄처럼 던지며
마구 흔들어 허물어뜨리는 것을
보았다네, 똑똑히
그리고 또한 들었다네
독립의 후예 자주의 주역 촛불시민들이
항쟁의 도시 광주에 모여
미7공군 담벼락을 타고 넘었다는 소식을
와와 터지는 함성, 궁궁 돋는 북소리도
무등 탄 아가가 날린 경고장도
미7공군 심장에 꽂혔다는 소식,
자주의 기운 활활 타오른 소식을
들었다네, 똑똑히

사과나무는 제 몸을 곧추 세웠다네
저 담장 허물 날이 드디어 오는가
청년들의 외침은, 촛불의 경고는
온 나라에 번져나갈 저항의 신호탄이리라
북소리, 노랫소리, 함성이며 춤사위까지
제각기 벼려 온 갖가지 무기들
일제히 담장 안으로 쏟아부을 때
사과나무는 제 자신도 다 던지리라고
결심의 주먹인 듯 열매 더 단단히 다졌다네

우리 땅 도처에 들어앉은 미군기지란 결국
우리 땅 도처의 마을과 사과밭이 쫓겨났단 것
수십 세월 그렇게 당하고만 살았으니
미국에 엇서면 대통령도 무사치 못하더라는
저잣거리 노인의 걱정, 넋두리가
촛불시민의 발걸음을 붙잡는 게지
모든 걸 다 던질 각오
진정 결심하였는가고 묻고 있는 게지
그러니 청년이여, 촛불이여, 답하라!
설움 많은 사과나무에게
걱정 많은 노인에게

어디까지 밀려나랴, 아니, 아니다!
언제까지 후퇴하랴, 아니, 아니다!
남녀노소 촛불로 다 일어서
동서남북 촛불로 다 몰아쳐
미국이 세운 벽 앞으로
한달음에 성큼 달려가자
자주라는 이름의 퇴거명령서
미군에게 당당히 내밀자
후퇴는 이제 그들의 것,
바다 건너 제 땅까지
힘껏 밀어내자, 더 힘껏

가자!
우리는 손에 손 잡고
마침내 미국 없는 새 세상
우리들 세상으로 달려가자
연분홍 사과꽃 천지인 거기
달큼한 사과향 가득한 곳
옛적부터 터 잡고 살던
삼천리강산에 봄맞이 가자
마을마다 골골마다
술 익는 내음 부드런 노랫소리
푸른 바람 붉은 웃음 뒹구는 곳
약속한 그대 먼저 와 계시리니
아름다운 날
그리운 날
승리의 날은
바로 저기에 있다
우리가 타고 넘을
미국이라는 벽, 그 뒤에 있다
가자, 달려가자!


캠프 험프리스 담장 건너에 있는 사과밭.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미군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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