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주통일연구소
  • 자주통일연구소
분석과 전망

북한, 왜 2월 8일을 강조하나

by 전선에서 2015. 2. 6.





<분석과전망>미국의 한미연합무력에 대해 인민군 무력으로 맞서겠다는 것인가?



최근 북한이 인민군에 기념일을 하나 더 정하고 인민군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부쩍 강조를 하고 있어 주목된다. 선군정치에 대한 강조 차원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예정에 따르면 미국은 머지않아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벌이게 된다.

미 당국은 항상 그래왔듯 방어차원의 훈련이고 연례훈련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누구할 것 없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긴장감을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세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게 핵 시험 임시 중단을 조건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임시중단을 제의한 상황에서 미국이 실제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북한은 어떻게 나오게 될 것인가? 

 

형식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답은 간단히 나온다. 북한이 제4차 핵시험을 하면 된다.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그럴듯한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미국이 북한의 그 제안을 일축하면서 ‘암묵적 위협’이라는 말을 썼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강’ 대 ‘강’이 부딪히고 그 강력한 대립구도가 한반도를 곧바로 전쟁접경의 상태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란 북미 간 대화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그리하여 한반도에 의미 있는 안정과 평화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일컬어 평화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평화주의자들은 숨 가쁠 정도로 대립일변도로 치닫는 정세를 예의주시를 하면서도 정세의 매 구석구석을 특별할 정도로 샅샅히 다 뒤지게 된다. 행여,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을 징후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몰라서였다.

미약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었다. 조그마한 징후라도 나타나기만 하면 평화주의자들은 기민하게 접근해 세세하게 분석할 태세다. 

 

그러나 그 징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징후가 없는 것에 실망을 하게 된 평화주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미국이 키 리졸브 훈련 개시일로 결정한 3월을 향해 빠르게 흐르고 있는 시간에로 보내고 있다.   

 

결국, 3월 초, 미국의 ‘키 리졸브’ 훈련과 북한의 제4차 핵 시험은 서로 만나게 될 것인가? 그리하여 서로 간에 대충돌은 발생하게 될 것인가? 

 

사람들은 그렇게 묻는다. 

 

그렇지만 현실은 한미연합군사훈련과 핵시험이 충돌하는 상황이 곧바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또 다른 측면에서 전문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6일자가 그 현실의 일부를 구성해준다. 대단히 의미로운 그 기사는 제목부터가 거창하다. <북한 37년 만에 '2월 8일' 정규군 창설일 띄우기>이다. 

 

기사에 따르면 북한은 인민군이 창설된 1948년 2월 8일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1948년 2월 8일을 '정규군 창설일'로 결정하고 이에 대해 언론매체들이 다양한 선전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2월 8일은 애초, 북한의 국가 명절 중 하나인 '건군절'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1978년 ‘건군절’을 바꾸게 된다.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한 1932년 4월 25일을 ‘건군절’로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2·8문화회관, 2·8예술영화촬영소 등 건군절을 기념한 주요 시설 명칭도 4·25문화회관, 4·25예술영화촬영소로 바뀌게 된다. 

 

4.25에 건군절을 내준 뒤 2.8은 이렇듯 북한에서는 아무날도 아니었다. 그러나 2.8이 다시  중요한 기념일로 된 것이다. 

 

연합뉴스가 정리해 보여주고 있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의 인민군에 대한 기획기사를 참고하면 북한이 2.8을 정규군 창설일로 결정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금방 파악된다.  

 

2.8을 정규군 창설일로 결정한 것은 인민군의 전통과 계승성을 보다 풍부화하고 정연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인민군은 1932년 4월 25일 조직된 항일유격대로부터 출발하여 1948년 2월 8일 '정규적 혁명무력'으로 강화되는 전후의 과정에서 정규군 대오가 확대되고 ‘현대적 군종·병종 건설에 필요한 기술 인재와 물질적 토대가 원만히 갖춰지는’ 군의 현대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인민군은 현재에 이르러 급기야는 핵 미사일까지 갖춘 무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민군에 대한 강조는 '백두 혁명정신'을 계승하고 있되 핵 미사일 능력까지를 갖춘 인민군에 대한 강조이다. 

 

이를 통해 북한이 종국적으로 취하려고 하는 태세가 무엇일지 가늠해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서 운용하는 미국의 한미연합무력에 인민군 무력을 직접 조응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른바 비례적 대응이다.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군사력은 핵 미사일을 앞세우는 미 전력의 총체이다. 

 

여기에 핵 미사일을 갖춘 인민군을 직접적으로 조응시켜 발생되는 것은 한 치의 틈도 허용되지 않을 팽팽한 긴장이다.

더구나 2월 8일을 기념일로 정함으로써 기간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조응시키고 있다. 정규군 창설일인 2월 8일부터 건군절인 4월 25일까지 인민군의 활동이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에 직접 조응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제4차 핵시험만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인민군의 총체로 조응한다는 것을 의미해준다. 그 때 인민군 무력이 하게 될 핵시험은 그 조응의 총화지점으로 된다. 

 

긴장의 배가이다. ‘강’ 대 ‘강’을 그렇게 북한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