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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사회문화비평

옥토버 서프라이즈

by 전선에서 2020. 9. 28.

내가 조 대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시사 콩트)옥토버 서프라이즈

 

한국의 고위급들이 너도 나도 방미를 한다. 10월 초엔 폼페오가 방한을 한다. 흥미롭다


그해 10, 많은 게 어긋났었다. 설겆이를 미뤘다고 아내한테 지적받았다거나 원재와 교산 그리고 허암이랑 종로에서 술 마시다 7만원이나 든 지갑을 잊어버린 것 정도야 넘어가면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분하기 짝이 없다.

 

모든 원인은 통일의 길조 대표에게 있었다.

아따, 그 날짜를 우리한테 주란 말이오

, 추석을 앞두고 조 대표와 몇일 간 실랑이를 벌였다. 내가 택일한 날인 106일을 조 대표가 선점해선 내게 양보를 하지 않아서였다. 이미 회원들에게 다 공지가 나가서 어렵다고 했다. 다른 날은 안된다고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조 대표는 내가 그 6일이 내 결혼기념일이라는 거짓말까지 둘러대는데도 꺾이지 않았다.

흐미, 징한 거

결국 우리 평화연방시민회의가 하게 될 미국은 들어라 시민행동날짜는 1027일로 밀려났었다.

 

우리 행사는 사실, 야심찼다. 저녁 어스름이 밀려드는 광화문 광장에서 미 대사관을 향해 문화 중심의 정치행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예전처럼 사회는 없는 것으로 했다. ‘주한미군 철거가가 미 대사관의 지붕과 담장을 부드럽게 포위하는 가운데 우리 공동대표 한 사람이 나와 대북제재 해제를 내용으로 3분 스피치를 깔끔하게 하는 게 그 첫 시작이다. 연설이 끝나면 준비된 종이박스에 대북제재글귀를 붙이면 됐다. 또 한 사람의 공동대표가 나와 한미워킹그룹을 비판하고 마찬가지로 그 글귀를 붙히는 것이었다. 발언 마지막에 상임공동대표의 종선선언 요청을 배치했다.

 

퍼포먼스에 많은 공을 들였다. 연설자들이 글자가 적힌 박스를 망치나 낫 등으로 깨면 그 뒷면에 종전선언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대북제재 해제와 한미워킹그룹 해체를 통해 종전선언을 하라고 미국에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정세 흐름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 기획단계부터 대박을 예상해도 될 성 싶었다. 누구보다 조 대표가 좋아할 것이었다.

행사의 압권은 마지막에 배치를 했다. 1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특기할만 한 모양새로 도열하게 했다. 그 앞에서 붓글씨를 꽤나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세칭, ‘교산 붓도사가 개량 한복을 입고 나와 가자 통일로라는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그 동안 민족 시인 한 분이 가자 통일로라는 명품 서사시를 우렁 우렁 낭송하는 것으로 화룡정점을 찍는 것이었다.

 

와우, 20분 짜리 행사로선 대단한데요

연극하는 후배를 낙원동으로 불러내 술 한 잔을 사주자 그렇게 칭찬을 했다. 예찬에 가까웠다.

누가? 짜줬어요? 형수님요?”

내 머릿 속에서 나온 거거든

안 믿겨요

시꺼

 

평화연방시민회의의 규모는 작으나 야심찬 그 문화행사는 그러나 치뤄지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10월 중순 쯤이었으리라. 미국의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한국의 강경화 외교장관 그리고 북 리선권 외무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종전선언을 했다. 우리행사를 몇 일 앞둔 시점이었다. 우리 행사를 준비하면서 불안해 했던 게 현실화되고 말았다는 것 때문에 난 아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앉아 그 세기적 풍경에 환호했다. 70여년만에 이뤄진 역사적 사변. 이성적으론 얼마든지 이해가 됐다.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이기는 해도 이후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할 수 없게 하는 정치적 근거가 되는데다가 평화협정을 예고해줌으로서 결정적으로는 6.12북미공동성명이 밝힌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었다.

허나, 감성적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영 쉽지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판문점 종전선언식에 박수를 보내는 동안 난 손으로 땅을 쳤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난, 조 대표를 만나면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조 대표가 몇 번인가 사과를 하기는 했다. “한 대표와 평화연방시민회의가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시킨 거, 미안하외다

허나, 그 해 10월 겪었던 그 아픔은 그런 몇 마디 말로 어루만져질 수 있기엔 상처가 너무 깊었다. 아직도 아물지 않았으며 날이 궂을라치면 여지없이 속이 쓰리곤 한다.

“TERRA를 사달라고 조르면 돼쟎아요

내가 아파할 때마다 아내는 언제라도, 그렇게 비아냥댔다. 그렇게 해야 아물 상처고 풀릴 속이라는 것이었다. 맞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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