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은 목숨과도 같다.
-한홍구 교수의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강연을 듣고
(8월 24일 한 시민통일운동단체가 주최한 한홍구 교수의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강연에서 강연자는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와 전쟁 시기에 일어난 양민학살 등 수많은 비극적 사건들을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분석합니다.
일단, 역사에 접근하는 실증주의적 태도의 집중성이 돋보였습니다. 친일적폐청산이라는 현 정세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좋았습니다. 특히, 강연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들의 주체를 오직 이승만을 비롯해 국내 친일파로만 규정해버리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많이도 말고 반 발자욱만 더 들어가도 그 모든 사건들이 국내 친일파 너머에 있는 미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나오는데 들어가던 발을 왜, 그 즈음에서 멈춰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게 아쉬움의 실체였습니다.
사실,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그 사건들을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분석해서였습니다. 분단체제 하에서 일어난 양민학살과 비극적 사건들을 서구 사회과학계에서 들여온 ‘국가폭력’이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접근해 분석하다보니 그 사건의 주체를 이승만 정부와 친일파들로만 규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국가폭력 개념이 역사분석기제로서 갖고 있는 한계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은 이승만 정부를 뛰어넘어 실체적 진실을 구성하고 있는 미국의 영역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치명적인 것은 결과였습니다. 미군정 시기 전쟁 시기 수많은 양민학살과 비극적 사건들의 주체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줴 은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치명적인 건 그 말고도 더 있었습니다. 전쟁 중 일어난 북 신천학살 사건을 두고 서북청년단의 소행 그리고 종교갈등이라고 규정한 게 그것이었습니다. 친미하고 반북하는 사람들, 반북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외우는 논리와 거의 비슷한 주장을 정의와 진리 그리고 진보를 추구한다는 명망 학자에게서 들으리라고는 애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강연자가 오래 전, 칼기 사건의 김현희를 북의 지령을 받아 임무를 수행한 북 공작원이 맞다고 한사코, 명시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만큼이나 충격이 컸습니다.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진실을 향해 내딛은 발걸음이 진실에 반걸음만 들어갈 뿐 진실이 다 밝혀질 지점에서 딱 멈춰서고 만 것을 참으로 슬프게 경험해야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해온 것으로 우리 분단체제 역사 분석엔 맞을 수가 없는 ‘국가폭력’이라는 분석틀은 그렇게 우리의 역사에 대해 사실과 본질 등을 심각한 수준에서 왜곡.오도하고 있었습니다 -글쓴이 주)
1-들어가며, 민족자주 관점
현재의 통일운동 그리고 그 통일운동이 개척하고 있는 통일정세에서 관통하고 있는 원리는 민족자주 관점입니다. 70여년 피어린 통일운동 역사가 또렷이 알려주고 있듯 통일운동의 주체역량을 강화시키고 통일정세를 발전시키는 데에서 민족자주 관점을 튼튼히 틀어쥐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없습니다. 민족자주 관점은 통일운동과 통일정세의 발전에서 관건인 대중이 민족자주 전선에 주인으로 올라서는 데에서 최고로 요구되고 있는 최고의 원칙입니다.
민족자주 관점은 특히 반민족세력이자 반통일세력인 미 제국주의와 일 군국주의 그리고 한국사회 분단적폐들의 발악적인 반발과 치밀한 역공이 최고조로 이르러 있는 현 시기 더욱 더 치열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통일운동은 반통일세력들에 맞서 반통일세력들이 강요한 분단의 원인을 제거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운동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자주 관점을 튼튼히 틀어쥐는 것은 아울러 ‘민족자주냐 사대의존이냐’로 형성돼 있는 현재의 통일운동전선을 흐리는 행태들이 적잖게 나타나고 있는 일각의 현실 때문에도 중요합니다. 그러한 행태는 일부 개혁정치인들 그리고 범 진보진영의 일부 지식층들에서 간혹 확인되곤 합니다.
2-미군은 45년 9월 8일 ‘3.8선 이남 점령군’으로 와 50년 7월 14일 국군의 작전권도 장악
해방 이후 분단이 기획.추진되고 그 이후 전쟁이 벌어지는 역사적 과정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겨레에게 가한 전반 침략행태가 얼마나 치 떨릴 정도이고 추악하며 교묘한 지를 생생하게 확인시켜줍니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당시 일어났던 수많은 양민학살과 비극적 사건들을 이념갈등 즉, 좌우대립으로 규정을 합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그를 통해 사건의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안두희의 김구선생 살해사건은 당시, 반공주의자이고 대중적 지반을 튼튼히 가지고 있었지만 민족통일국가를 지향했던 김구 선생을 제거하고 소수파로서 대중적 지반이 허약했으나 미국에 충실한 이승만을 권력의 꼭대기에 올려 분단을 획책하려는 미국의 거대한 정치전략이자 치밀한 공작이었습니다. 미국은 안두희의 정치적 배후로 친일파 김창룡을 지목합니다. 그 사건의 진짜 배후인 미군 첩보부대(Counter Intelligence Corps:CIC)를 은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단순히 사실 하나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체계적으로 가동시키고 있었던 한반도지배전략을 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의 총체는 ‘분할하여 통치하라’였습니다.
그들은 해방 후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등에 대해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이라고 규정합니다. 극악한 진영논리입니다. 4.3항쟁과 여순항쟁의 본질은 민중들이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미군정의 민족분할통치전략에 맞선 항쟁이었습니다. 그 항쟁에서 민중 학살 주체들은 형식적으로만 보면 한국의 군인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이 맞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군인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은 다 1945년 9월 8일 3.8선 이남에 진주한 ‘점령군’ 미군에 의해 완전 장악된 군사치안체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사건들을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이라는 이념적 진영논리로 규정하고 설명하는 것은 학살의 주체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리고 당시 전선의 본질이었던 ‘민족 대 반민족’이라는 대결구도를 왜곡하기 위해 내놓은 범죄적인 프레임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동족상잔’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또한 전쟁 발발의 원인과 책임 그리고 전쟁 중 자신들이 일으킨 수많은 만행과 범죄를 은폐시키려는 것을 그 정치적 목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1949년 1월 18일부터 1950년 6월 24일까지 있었던 전투횟수가 총 874회라고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 중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로 진행된 것은 너덧 회가 아니었습니다. 1949년 3월에 발생한 개성 서북쪽의 송악산 전투를 그 비근한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이어, ‘1949년 6월 7일에는 국군이 인민군을 가장해 38선 북쪽으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진 한 고지를 점령했고, 같은 해 6월 17일에는 38선 이북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황해도 태탄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6월 18일에는 은파산을 점령했는데, 이 전투 때에는 개인 화기뿐만이 아니라 포까지 동원되었습니다. 북측의 주장에 따르면, 국군이 침입한 횟수는 432회에 이르고, 그 가운데에 71회는 비행기 침입, 42회는 함대습격도 포함되었습니다’. 그 당시 전선은 황해도 옹진에서 강원도의 양양까지를 아우를 정도로 넓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전투가 이승만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에 따르는 미군의 작전계획에 의한 것이었음은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6월 25일 1년 전 3.8선 부근은 이렇듯 미군이 직접 주도.지휘하는 전장터로 사실상 전쟁은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전쟁 중 발생한 수많은 양민학살들에 대해서도 이념대립으로 바라봅니다. 그 과정에서 예컨대 대전 산내 학살과 경산 코발트 학살사건 그리고 보도연맹 사건 등에 대해 학살주체가 국군과 경찰이었다는 것을 크게 강조합니다. 그러나 국군과 경찰은 독자적인 체계가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미군의 명령체계에 운용되는 군사치안체계였습니다. 50년 6월 29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는 이승만에게 작전권을 달라고 했으며 그게 이뤄진 게 그 사건들이 발생하기 이전인 7월 14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미 제국주의자들은 미군정 시기와 전쟁시기에 이뤄졌던 수많은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다 좌우익의 대립으로 몰아감으로써 양민학살과 비극적 사건에서 학살의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감춰놓은 것입니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심지어는 1950년 10월 13일에 시작돼 본격적으로는 18일부터 총 52일 간 벌어졌던 3만 5천여 명의 ‘신천학살’에 대해서도 종교 간의 갈등 내지는 ‘우익 서북청년단’의 학살이라고 말하는 등 이념갈등의 결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작가 황석영이 2002년 소설 ‘손님’이 그걸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소설 ‘손님’은 서양의 ‘손님’인 기독교와 맑스주의가 학살의 주범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신천학살사건 연루자인 미국의 유태영 박사가 황 작가에게 변절자라며 본질을 왜곡치 말라고 엄하게 꾸짖었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신천학살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듯 신천 점령 미군사령관 해리슨 디 메든 소장의 인간살육만행이었습니다. 해리슨은 야전 전투 부대가 아니라 전쟁 중 특수임무(자유 한국의 통일을 위한 군사 첩보활동)를 수행했던 미군 첩보부대(CIC)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전쟁 전에는 이승만정권을 수립하는 데에 비밀 활동을 했으며 특히, 전쟁 중에는 이북 점령지역에 들어가서는 북 정부의 관료들과 부역자들 동조자들 그리고 그들의 일가족들을 모두 색출하여 제거하는 작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집행했던 비밀정보조직이 CIC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해방 이후 분단 시기 그리고 전쟁 시기에 이루어진 양민학살 등 비극적 사건을 만들고 지휘한 실질 주체가 미 제국주의자들이고 그 비극적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것 역시 미 제국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실증주의적으로 확정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북이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해 우리 겨레의 ‘철전지 원수’라고 한 것은 단순히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극히 현실적으로 내린 과학적 규정입니다.
3-‘국가폭력’이라는 개념은 분단체제인 한반도에 적용할 수 없는 분석틀
범진보 진영의 지식층 일각에서 분단체제에서 일어난 양민학살 등 비극적 사건을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분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은 서구 사회과학계가 만들어낸 개념체계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의 지식인들이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을 즐겨 원용하는 이유입니다. ‘국가폭력’은 구체적으로, 서구 학문체계의 한 범주인 ‘반국가주의론’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반국가주의론’은 국가의 권력이 집중되어있고 남용되는 것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 ‘국가폭력’ 등을 주요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특히 ‘시민’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자본주의 권력체계에 진입하지 못한 일부 진영이 자본주의자들의 ‘권력독점과 남용’과 ‘국가폭력’을 비판하면서 ‘정의’를 앞세우고 ‘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 권력 플랫폼에 진출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범주가 반국가주의론의 본질입니다.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권력체계에 접근하려는 권력욕의 또 다른 형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폭력’ 개념은 자본주의 체제가 일반화된 서구에서는 일정 의미있게 통할 수 있는 분석체계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만들어내 구조적으로 공고화시킨 분단체제이자 미국이 이식한 기형적이고 천박한 자본주의체제인 한국사회에선 전혀 유용하지 못한 분석틀입니다. 분단체제인 한국의 역사를 국가폭력 개념으로 접근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치명적입니다.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해버리면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이 약소국인 우리 민족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를 숨겨주는 것으로 돼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4.3항쟁이나 여순항쟁, 보도연맹사건 그리고 5월 광주학살 등을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체계로 접근.분석해서는 안되는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나가며,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은 70여년 통일운동이 쟁취한 우리겨레의 전략자산
분단체제 하에서 일어난 수많은 양민학살 등 비극적 사건들을 이념의 진영 논리나 국가폭력 개념으로 접근해 미 제국주의의 책임을 은폐하거나 엷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70여년 넘게 지속된 분단체제 하에서 민족자주 관점을 제대로 틀어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통렬하게 보여줍니다. 분단체제 하에서 역사를 제대로 보는 데에서나 정세를 정확히 읽는 데에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현시기 통일운동을 성과적으로 벌여가는 데에서 민족자주 관점은 생명과 다름 없습니다. 지난 해 9월 평양공동선언이 그 맨꼭대기에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올려 놓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기 좋고 멋있으라고 올려놓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럴듯한 정치수사로 올려놓은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은 7.4공동성명에서의 ‘자주’와 ‘민족대단결’, 6.15공동선언에서의 ‘우리민족끼리’ 그리고 판문점선언에서의 ‘민족자주의 원칙’을 다 오롯이 담아 집대성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겨레가 70여년 조국통일운동이라는 ‘혈로’를 개척해오면서 쟁취한 우리 겨레의 전략적 자산이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입니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이 갖고 있는 그 전략적 의의와 그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생활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통일운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가 노동자든 농민이든 청년.학생이든 지식인이든 시민이든 그리고 남에 살든 북에 살든 해외에 살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들어 역사적인 9월 평양공동선언의 최고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어린 아이 눈동자처럼 목숨처럼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특히 가슴에 새기고 활동을 해야합니다.
특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민족, 이후 웅비할 수 밖에 없는 위대한 우리 겨레의 성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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