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방안과 민족통일전선 그리고 민족통일기구
<분석과 전망>평화 번영,자주통일의 전성기와 조국통일운동의 당면 전략과제
“북과 남은 통일에 대한 온 민족의 관심과 열망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의 좋은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이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진행된 것이 남북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남에 그렇게 통일방안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북이 신년사를 통해 통일방안을 언급한 것은 1991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에 부응하는 주동적 조치라 할 수 있다.
북이 남에 통일방안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현 시기 조국통일운동에서 통일방안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남과 북이 각기 다른 통일방안에서 공통점을 찾아내 통일방안의 방향성에 합의를 이룬 것이 2000년 6.15공동선언이었다. 2항에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로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한 것이다.
북의 통일방안은 연방제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상당히 많다. 미국, 러시아, 독일을 위시하여 스위스, 캐나다, 오스트리아, 호주, 멕시코, 아르헨티나, 말레이시아 등 무려 27여 개 나라에 이른다. 성립된 배경이나 성격 등이 나라들마다 물론,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전후해 동부 13개 주가 각각 독립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국가연합 형태를 취하다 영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독립된 주들이 국가로 뭉쳐야한다며 1789년 연방제를 채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일독일은 동독의 주지사 여러 명과 서독의 주지사 여러 명이 광역지방자치를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전국총선을 통해 뽑힌 총리가 연방정부를 구성한다. 연방제의 본질은 1국가 2체제 2정부다.
남의 통일방안은 연합제다. 연방제 체제가 공고하다면 이 보다 느슨한 체제가 국가연합이다. 국가연합은 둘 이상의 독립 국가가 외교나 군사 따위의 일정한 범주의 국가 기능을 공동으로 행사하기 위해 평등하게 결합한 체제다. 가장 유명한 국가연합이 유엔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독립국가연합 아세안 등 역시도 국가연합들이다. 국가연합 구성국들은 정치권 외교권, 국방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남북연합단계의 본질은 2국가 2체제 2정부다.
통일방안 문제는 민족통일전선 구축 문제와 민족통일기구 수립 문제 등을 포괄하는 것인 만큼 조국통일운동에서 관건적인 문제다. 민족통일전선은 남북의 정부 정당 각계각층 사회단체와 해외가 통일문제에 대한 총의를 모으고 실행하는 정치조직적 총화이며 민족통일기구는 그 위에 세우는 통일의 국가기구이다.
통일방안과 민족통일전선 그리고 민족통일기구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서울방문 사업과 밀접히 직결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방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나 방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과는 그 차원과 범주가 다르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진전이 이루어지고 남북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전제로 하며 통일을 예고하는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방문이 통일방안이자 민족통일전선이며 민족통일기구라는 것을 확정해준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해 한 시인이 ‘오셔요, 통일’이라고 노래했던 이유다.
1.북의 연방제 안과 조국통일 3대헌장
-민족통일전선과 민족통일기구를 중심으로
1)최고민족위원회와 대민족회의
김일성 주석이 연방제 안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은 1960년 8월 15일이었다. ‘8.15 광복 15주년 기념연설’에서 평화적 조국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편은 남북 총선거이지만 이를 남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 조선의 련방제를 제의한다”고 했다. 4.19 이후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라는 구호가 나오는 등 발전하는 조국통일운동 정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당분간 남북의 현재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두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 남북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자는 것이 그 골자였다. 표면상으로는 연방제였지만 실제로는 국가연합에 가까운 것이었다.
연방국가 수립 방도로 설정했던 선거를 남측을 고려해 사실상 폐기했다는 것 그리고 ‘최고민족위원회’를 제시한 것이 주목할 대목이다. 민족통일기구인 ‘최고민족위원회’는 양 정부 대표들로 구성되는 상층 민족통일전선이다.
김일성 주석은 이어 73년 6월 23일 ‘조국통일 5대 방침’을 발표한다. ①남북 군사대치 해소 ②남북 합작과 교류 ③남북 각계각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 소집 ④고려연방공화국을 국호로 하는 남북연방제 실시 ⑤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 가입 등이 그 주요내용이다. 72년 7.4공동성명을 통해 남북이 합의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구체화한 것이었다.
‘조국통일 5대 방침’에서 주목되는 건 연방국호로 ‘고려’를 제기했다는 것 그리고 특히 ‘대민족회의’ 소집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대민족회의는 그 구성을 남북의 각계각층, 정당·사회단체 개별 인사와 해외교포단체들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통일전선이다. “통일문제를 인민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남북의 각계각층 인민이 조국통일을 위한 거국적 애국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서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60년에 제기했던 민족통일기구 ‘최고민족위원회’를 아래에서 받쳐주는 하층 민족통일전선으로서 위상을 갖는다.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 간 민족통일전선은 1948년 4월 19일 평양에서 개최한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가 그 시원이다. 물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직후 남과 북이 함께 꾸렸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도 있다.
대민족회의는 그 이후 명칭만 달리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남북정치협상회의(1974.11, 1977.1)를 비롯해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1983.1), 남북연석회의(1988.1), 남북정치협상회의(1989.1), 민족통일협상회의(1989.9), 당국·정당수뇌협상회의(1990.1),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1991.1, 1993.8), 8.15 대민족회의(1995.8)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북은 2016년 6월 9일에는 ‘전민족적 통일대회합’으로 ‘남북해외 제 정당, 단체, 개별인사 연석회의’를 제기했었다.
2)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과 낮은 단계 연방제 안
북의 완결된 통일방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다. 김일성 주석이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제시했다. 핵심내용은 ①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는 그대로 두고, 그 기초 위에서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닌 각각의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 창립 ②남과 북이 동수의 대표로 연방국가의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여 정치, 외교, 군사권을 보유 ③각 지역정부는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해 남과 북의 지역 정부를 지도한다는 것 등이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중립국가를 표방했다는 것과 ‘최고민족연방회의’가 정치, 외교, 군사권을 보유한다는 점이다. 중립국가 표방은 대외정책노선으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간 대결체제인 냉전체제에 남과 북이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블럭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최고민족연방회의의 정치, 외교, 군사권 보유는 민족통일기구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보장하는 것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한다.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원칙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며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 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잠정적으로는 련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더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련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느슨한 연방제’는 ‘낮은 단계 연방제’로 불리워졌으며 최고민족연방회의의 권한은 느슨하게 하고, 대신 지역정부의 역할을 하는 연방상설위원회에 정치·외교·군사권을 주어 독자성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3)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김일성 주석은 1993년 4월 6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한다.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대해 북은 ‘민족대단결 사상과 그 실천적 경험이 가장 집약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민족대단결 총서’라고 했다. “조국통일운동사에 민족대단합의 새로운 장이 펼쳐짐을 알리는 포성이었으며 통일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역사의 분수령으로 된 일대 사변”이라고도 했다. 항일투쟁 시기 ‘조국광복회’의 원리를 분단체제에 적용한 것이었다.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은 특히, 최고민족연방회의 등 상층 민족통일전선과 대민족회의나 연석회의 등 하층 민족통일전선의 결성과 운영 관련해 그 대강과 원칙을 밝혔다는 점에서 남과 북에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4)조국통일 3대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7년 8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라는 논문을 통해 조국통일문제를 전일적으로 체계화한다. 72년 ‘조국통일 3대원칙’, 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93년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식화한 것이다. 북 조국통일전략의 완성이었다.
5)북 연방제의 특성
북의 연방제 안은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기는 하지만 사상과 체제가 달라 하나의 국가로 합치기 쉽지 않다는 현실론에 착목한 것이었다. 남과 북이 안으로는 각각 체제가 다른 지방정부를 유지하면서 밖으로는 군사권과 외교권을 합쳐 하나의 연방국가로 만들자고 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같은 이념과 체제를 지닌 주들이 대내적으로 각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 하나의 강력한 국가 체제를 이루기 위해 연방제를 택하였다면, 북은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진 남북 정부가 일시에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연방제를 취하자는 것이었다.
북의 연방제는 다른 나라의 연방제와는 달리 연방제적 성격은 축소시키고 국가연합적 성격은 확장해놓은 특성을 갖고 있다. 북이 고려연방제를 영문으로 “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yo"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다. federal(연방)이 아니라 Confederal(연합)인 것이다. 연방제에 국가연합적 요소를 보다 많이 그리고 분명히 포함시킨 것이 ‘낮은 단계 연방제’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를 제기하면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라는 명분을 단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이 연방제에 연합제 내용을 많이 포함시킨 것은 친미분단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는 남의 정치지형을 고려한 전략적 조치일 것으로 보인다.
북이 연방제를 확정하는 과정은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상층민족통일전선으로서 국가기구인 민족통일기구를 연방제 원리에 맞게 짜되 남의 현실에 맞게 변화시키는 과정이 한 갈래이고 그 민족통일기구를 받쳐주는 하층 민족통일전선 구축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또 하나의 갈래였다. 민족통일기구는 60년 ‘최고민족위원회’에서 출발해 80년 ‘최고민족연방회의’에서 연방제의 완성형태로 정점을 찍었다가 91년 남을 고려해 낮은 단계연방제에서의 ‘민족통일기구’로 변화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하층 민족통일전선은 48년 연석회의의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73년 ‘대민족회의’에서 출발해 연석회의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93년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에서 사상이론적 토대를 확보했다.
2.남의 통일방안과 연합제 안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국가연합단계를 중심으로
1)박정희 6.23선언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이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한다. ①조국의 평화적 통일 달성 노력 ② 내정 불간섭과 불가침약속 ③ 북한과 동시 유엔가입 등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6·23선언’은 그러나 엄밀히 보지 않아도 통일정책이기 보다는 외교정책에 가까웠다. 북이 70년대 수교국 수를 늘리는 가운데 여러 국제기구에도 진출하고 특히 비동맹권 외교에서 위상을 강화해나가는 것 등으로 인해 박정희 정부가 외교전에서 수세에 몰리자 외교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동구권과의 교류 확대 등 적극적인 외교방향을 담아 내놓은 외교독트린이었던 것이다. 유엔 동시가입에서 선명히 확인할 수 있다. 유엔 동시가입은 7.4공동성명을 부정하고 분단을 사실상 영구화하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을 폐기한 것이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단을 고착화하는 이른바, 양국체제론이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박정희 정부는 북의 연방제를 북의 민주기지론에 기초한 대남적화전략 즉, 체제통일론이라고 왜곡했다. 그리고는 반공이데올로기를 구축해 북을 ‘악마화’했고 학교교육은 반공교육으로 일색화시켰다.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 낮은 경제력과 미흡한 국방력 등을 가리기 위한 정치전략이었다.
2)민족공동체 통일방안(3단계 통일방안)
남의 통일방안이 보다 온전한 형태로 나온 것은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부 때 이르러서였다. 노태우 대통령이 89년 9월 11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체계를 제대로 갖춘 것이었으며 특히 7.4공동성명의 조국통일 3대원칙에 상당부분 부합하는 것이었다. 김영삼.김대중의 통일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북의 연방제에 가장 근접한 방안으로 평가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다듬어 1994년 8.15기념사를 통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3단계 통일방안)으로 발표한다. 3단계 통일방안은 그 이후 남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자리를 잡았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 평화, 민주를 기본 원칙으로 세웠으며 통일과정을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등 3 단계로 설정했다. 화해협력단계는 남북 간의 적대와 불신을 줄이고 상호협력의 장을 열어가는 단계이다. 분야별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면서 분단 상태의 평화적 관리를 핵심으로 했다. 2단계인 남북연합단계는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제도화하는 단계로 상호신뢰 구축과 평화정착으로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 하에서 통일지향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통합과정을 관리해나가는 공정이다. 통일헌법 제정이 핵심이다. 마지막 3단계는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단계다. 남북연합단계에서 제정한 통일헌법에 따라 남북한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통일국회를 구성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주목할 대목이 2단계인 남북연합단계이다. 6.15공동선언 2항에 ‘남측의 연합제 안’으로 명시돼있는 대목이다.
3.연합연방제 방식의 통일방안
1)연합연방제 방식의 의미
통일방안과 관련한 남북 합의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72년 7.4공동성명과 2000년 6.15공동선언 2항을 꼽을 수 있다.
7.4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이 최초로 합의한 통일 사안으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원칙은 조국통일운동의 본성을 밝혀주고 분단 이래 전개된 전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원리적으로 총화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위력한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다. 조국통일 3대원칙은 조국통일운동이 성과적으로 전개되는가 그렇지 않는가 그리고 조국통일운동의 정형이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는가를 가르는 철의 기준이다.
조국통일 3대원칙이 통일방안과 관련이 있는 것은 조국통일 3대원칙이 통일방안의 중요한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조국통일 3대원칙은 통일방안과 관련해 방향을 민족자주로 방법을 평화적인 것으로 그리고 동력을 민족대단결로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2항에 있는 남의 ‘연합제’란 남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제시하고 있는 3단계 통일과정에서 2단계인 남북연합단계를 지칭한다. 연합제는 서로 사상과 체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속에서 2체제 2정부를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 2항에 있는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란 김일성 주석의 ‘느슨한 연방제’를 지칭한다.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은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주년 기념식’에서 한 보고연설을 통해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한 설명을 내놨다.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남에서는 연합연방제로 북에서는 연방연합제로 표기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6.15 남북공동선언 2항이 명시하고 있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점’이다. 그 공통점은 남의 3단계 통일방안에서 2단계인 남북연합단계와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 사이의 공통점을 말한다. 공히 2체제 2정부로 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남과 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연합연방제 방식을 합의한 것은 남과 북이 최초로 통일방안의 방향성에 합의했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연합연방제의 합리성과 현실성
연합연방제는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반해 있는 만큼 통일방안의 방향으로서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기도 하다.
연합연방제의 합리성은 조국통일 3대원칙에 부합하고 있는 데에서 확보된다. 조국통일 3대원칙은 베트남 식의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도 독일식의 흡수통일인 체제통일도 배제하고 있다. 베트남 통일은 전쟁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체제통일이었으며 독일통일은 사회주의 동독의 붕괴를 전제로 한 자본주의로의 흡수통일이었다. 연합연방제는 조국통일 3대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 외세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자주적이고 무력이 아닌 평화적이며 또 체제통합이 아니라 민족대단결적인 통일방안인 것이다.
연합연방제는 아울러 남과 북의 서로 다른 현실을 인정한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기형적이기는 해도 재벌 중심적인 자본주의체제로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대국인 남이 자본주의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리는 없다. 그리고 핵 강국이자 전략국가로서 사회주의 강성국가인 북이 사회주의체제와 인민민주주의를 포기할 리 역시 없다.
이처럼 연합연방제 방식은 조국통일 3대원칙에 부합하고 남과 북의 서로 다른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체제통일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이 아니라 평화적인 통일방안이다.
4.민족통일기구 수립 경로
-민족통일전선 건설과 서울남북정상회담
1)연합연방제와 민족통일기구
연합연방제는 완전한 통일방안도 완결된 통일방안도 아니다. 여러 공정을 거쳐 구체화시켜 완결시켜야하는 통일방안의 방향성이 연합연방제다.
연합연방제 실현에서 관건은 민족통일기구 수립문제다. 6.15시대 초창기 북 안경호 서기국장은 민족통일기구에 대해 “쌍방이 실정에 맞게 창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연방제 하에서 민족통일기구는 국방권 외교권을 갖지 않는다. 민족통일기구가 국방권 외교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민족통일기구가 제한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있는 ‘최고민족연방회의’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고민족연방회의’는 안으로는 연방국가의 최고 기구며 대외적으로는 국가를 대표하는 통일정부다. 국방권과 외교권을 갖고 있어서 확보되는 위상이다. 그 위상은 ‘최고민족연방회의’가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하여 남과 북의 지역정부들을 지도하며 연방국가의 전반적인 사업을 관할하는 것으로 발휘된다. 하지만 연합연방제 하에서의 민족통일기구는 국방권 외교권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 남북을 전일적으로 지도하고 관할하는 연방정부로서도 그리고 대외적으로 국가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서도 많은 제한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민족통일기구가 국방권 외교권이 없다는 것은 그러나 남북 합의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당장에는 연방정부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두 개의 주권 국가에 방점을 찍고 있는 남의 연합제안과 결부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연합연방제 하의 민족통일기구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민족통일기구가 수준이 낮고 형태가 느슨하기는 하지만 분단 이후 민족적 합의에 의해 최초로 운영되게 되는 국가기구라는 점이다.
민족통일기구 수립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판문점선언이 밝혀준 자주통일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것이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 세워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제대로 틀어쥐는 일이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미국이 연합연방제 하에서 민족통일기구가 수준이 낮고 형태가 느슨하다는 것을 약점으로 삼아 어떻게든 개입하고 간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결정적 담보가 된다는 점이다.
2)민족통일기구와 민족통일전선
민족통일기구 수립 과정은 행정적 절차를 밟아가는 단순공정이 아니다. 연합연방제 하에서의 민족통일기구가 국가기구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결정적 담보가 있다. 민족통일전선이다. 서로 체제가 다른 데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갈등 요소들을 미리 막고 해소하는 데에 민족통일전선만큼 좋고 위력한 방도가 없다.
민족통일기구는 남북의 각계각층과 정당 사회단체 그리고 해외가 총의를 모으는 민족통일전선을 지반으로 해야만 온전하고 성과적으로 수립될 수 있다. 판문점 선언이 민족공동행사의 위상에 대해 규정해놓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다. 민족공동행사는 다양하고 활발한 남북교류에 기반해 벌이는 것으로 그리고 특히 정부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5자를 그 주체로 한다. 이는 민족공동행사가 민족통일전선 구축의 단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은 남북관계 발전 정도에 맞춰 머지않아 ‘전민족적 통일대회합’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그 제기를 수용할 주체와 방식이 민족공동행사다. 2016년 9월 북이 제기한 연석회의가 성과없이 끝났던 것과는 양상이 다를 것이다. 이처럼 정부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5자가 벌이는 민족공동행사는 하층 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하는 과정이 된다. 민족공동행사가 발전해가면서 그 안에 ‘전민족적 통일대회합’을 품게 될 때 민족통일전선의 구축 공정은 본격화되게 될 것이다.
3)민족통일기구와 서울남북정상회담
민족통일기구 수립은 그 위상 그리고 역사성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이 결정하게 될 위업이다. 북미정세와 남북정세 등 전반 객관정세에 조응하되 특히 통일방안 구체화와 민족통일전선 건설 사업이 일정 정도 성과있게 전개되는 것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방안도 민족통일전선 구축도 그리고 민족통일기구 수립 문제도 김정은 위원장과 떼놓고서는 사고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분단 이래 최초가 되는 서울남북정상회담과 결부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본격적인 일정에 올려놓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가 민족공조의 궤도에 오를 즈음 서울 방문이라는 세기적 결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문재인 대통령과 서울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마침내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민족통일기구 수립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남북 해외 통일운동진영이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밝혀주고 있는 대로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높이 들고 판문점선언이 제시해준 자주통일의 방향을 향해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민족통일전선의 지반을 구축하게 된다면 그리 멀지 않은 날에 남과 북은 전민족적인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내올 수 있을 것이며 그를 실현하는 민족통일기구 또한 수립하게 될 것이다.
전민족적인 합의에 기초하는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구체화하고 민족통일전선의 구축에 기반하는 민족통일기구가 수립되는 때, 세계는 미국에 의해 갈라져 살았던 8천만 우리 겨레가 미국의 대한반도지배전략이 만들어 70여년 간 지속시켜온 분단의 사슬을 어떻게 뭉턱 잘라내고 통일의 역사적 첫 발을 얼마나 위력하게 떼는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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