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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그리며 동지를 그리며 권말선 물구나무를 선 채 위태롭게 걷는 세상에 동지여, 진실을 외친 그대는 가혹한 벌을 받고 찬 벽 속에 갇혔는가 그대 확신에 찬 목소리에 귀를 열고 눈을 뜨고 마음 들떴던 이제부터는 우리가 메아리가 되리니 우리에게 들려 준 노래, 염원 가득한 이야기들 다시금 가슴에 떠올리며 가는 길 험난해도 우리 함께 웃으며 가리라 그대가 밝힌 촛불이 모닥불로 타오르고 횃불로 흩어져 온 산 꼭대기 마다에 봉화로 타오르면 어두운 세상, 거꾸로인 세상, 제멋대로인 세상 결국은 모두, 모두 다 빛나는 태양아래 환해지리니 동지여, 밤을 지새며 들었던 그대 이야기, 아름다운 이상이 실현됨을 함께 보리라 두 다리 튼튼히 세우고 허리를 곧게 편 채 밝은 태양을 향해 제대로 걷는 세상, 그런 세상이 곧 오면 동지여, .. 2014. 3. 18.
아이야, 들쭉 따러 가자 아이야, 들쭉 따러 가자 권말선 눈이 초롱한 귀여운 딸아, 아들아 나랑 들쭉 따러 백두산 기슭에 가자 바람 싱긋한 8월, 산은 야생 열매들의 짙푸른 천국, 들쭉나무 온 산에 융단 같겠지 알롱달롱 달린 조그만 열매들 따다 냠냠 먹노라면 들쭉 단물에 젖어 시간이 거꾸로 흘러도 모르겠지 산토끼, 어린 곰, 겅충뛰는 사슴도 모여들고 태양이 눈부신 동산에서 얼룩덜룩한 얼굴도 아랑곳없이 온종일 와르륵 기쁨에 들뜨겠지 해거름 산을 내려갈 땐 아이야, 그 길을 기억해 두었다가 태양이 찬란한 어느 여름에 꼭 다시 오거라 너희 어린 아들, 딸들 데리고 더불어 들쭉전설도 들려 주렴 깊은 산 속에서 길 잃은 장수가 열흘넘게 굶다가 탐스런 적자색 열매를 실컷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들의 죽, 그렇게 고구려 장수의 기운도 항일혁명가.. 2014. 3. 18.
즐거운 소식 즐거운 소식 권말선 님은 북쪽에서 나는 남쪽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수십년을 각자 살다가 우리 이제 만나는 날이, 다시는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이 곧 온다 합니다 그리운 우리 님은 오랜 세월 척박한 땅을 일구고 고난의 땀으로 거름을 주어 황금열매를 한아름 딴 지금 (나를 부르시고) 지축을 울리는 힘찬 발걸음으로 (나를 깨우시어)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호령하시며 (나를 눈 뜨게 하시더니) 바람과 구름과 비를 이끌고 (나를 광야로 불러 내시네) 남쪽으로 남쪽으로 오신답니다 하여, 나도 이제 님 맞으러 달려 갑니다 님 반길 아무 것 없는 빈손이지만 그립던 우리 님을 만나면 나는 무릎꿇고 절을 하리다 님 꼬옥 안은 채 울고 웃으며 만세, 만세, 만세로다! 외칠터이다 우리의 기쁨 온누리 모두 알도록 노래하고.. 2014. 3. 18.
코스모스를 위하여 코스모스를 위하여 권말선 ......어느 봄날 누군가 바쁘게 꽃길 가꾸시더니...... 작년 가을의 코스모스길 도레미파솔랄라라 분홍 자주 하양 가녀린 줄기 한들한들 이어지다 끊기다 다시 이어지던 2Km 넘는 상하행 그 꽃길이 너무 밋밋해서 그랬나, 꽃들 향해 손 흔들며 날리던 내 사랑의 외침이 - 오! 얘들아, 안녕? 너희들 정말 예쁘구나! 사랑해, 고마워! - 너무 시끄러워서 그랬나, 올핸 한 쪽 길가엔 키 낮은 코스모스 한 쪽 길가엔 잡초만 덩-그렇구나 바쁘신 사또님 취향에는 길고 한가롭던 꽃길일랑 너무 사치였던걸까 어린 싹들 죄 뽑히고, 내 추억어린 기대도 다 밟히어 가을을 기다리던 이유였던 '코스모스 가득한 길'은 사라지고 작년 이맘때쯤의 희끔한 사진에만 남았어라 용인시 이동면 화산리 입구 은행나.. 2014. 3. 18.
인 연 인 연 권말선 손가락 끝을 스치고 지나간 아쉬운 그대는 그리움에 지친 먼 훗날 꿈속에서라야 겨우 만나지는 것일까 함께한 시간들은 세월을 따라 닦여지고 쓸려가고 잊혀지다 초롱한 추억의 알맹이만 멀리 별빛처럼 반짝이는 것일까 손 안에 담을 수 없는 지나간 날은 가슴에 둥실 그리움의 달로 뜨고 이리도 깊은 밤 꿈 속에서 나를 아니 나는 그대를 찾는 것일까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이룰 수 있다는데 헤어진 우리 인연의 고리는 더듬더듬 언제쯤 다시 엮을 수 있을까 - 10년 1월15에 헤어지고는 못 본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쓰다 2014. 3. 18.
손목시계 손목시계 권말선 유리가 깨어진 손목시계는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앓는 소리도 안내고 꿋꿋이 자기 길 잘도 간다 나는 손가락 하나만 아파도 이맛살을 찌푸리고 약국엘 가고 머리를 못감네 설거지를 못하겠네 엄살을 떠는데 거미줄 친 듯 유리가 짜갈라진 손목시계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보란 듯 째깍째깍 째깍째깍! 나보다 단단한 놈 허허, 무서워서 너 어디 손목에 차겠나 2014. 3. 18.
사랑, 웃자 사랑, 웃자 권말선 사랑 을 예쁘게 포장해 보냈는데 그대는 사랑 더하기 상처 를 주네요 상처난 사랑 을 만지작거리며 비 오는 창가에서 기다렸는데 그대는 비 개고 햇살 들도록 오질 않고 날은 저물었어요 사랑 을 예쁘게 포장해서 다시 보내려다 상처 도 함께 돌아올까봐 두려워 방 한 쪽에 밀어두었더니 사랑 은 저 혼자 울퉁불퉁 울다 잠들었어요 (사랑은 저 혼자서는 오는 길을 몰라 상처니 슬픔이니 기다림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애절한 것들과 늘 동무해서 오는지) 어두워진 창가에 우두커니 나 혼자 사랑도 기다림도 잊어보려 바라다보는 허공엔 곤한 가로등 도로를 흐르는 무심한 불빛 구름에 숨어 우는 달과 별 별 별 점점 흐려진 뒤 둥그런 그대 눈빛 그저 한 번 웃어, 웃어보라 하네요 2014. 3. 18.
여치 여치 권말선 찌르르 찌르르 여치 울음 가만히 들으면 귀가 쨍쨍 잡을까 말까 손도 벌벌 여치도 벌벌 찌르르 찍. ** 초등학교 3학년때 지은시, '숨어있기 좋은 집'에서 퍼옴.. ㅋㅋㅋ 2014. 3. 18.
어미새 어미새 권말선 어미새 한 마리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알을 따뜻이 품어준다 새끼가 나오면 벌레를 물어다 배를 채워주고 둥지가 편하도록 보살펴 주고 또 배를 채워주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애쓴다 행여 천적이 새끼들을 채갈까 노심초사 신경쓰며 제 녀석들 힘찬 날개로 푸드덕 멀리 날 때까지 살아남는 요령, 굵은 비를 피하는 방법, 맛있는 먹이의 종류 쉴 새 없이 알려 주며 또 먹이를 물어다 준다 새끼들 튼실히 자라 둥지를 떠나면 그 녀석도 어디선가 짝을 찾아 둥지를 틀 것이고 새끼도 낳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마리의 어미새가 되겠지 그처럼 때로 나도 나 자신이 한 마리 어미새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한 마리 건강한 어미새로 길러 내기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는 많은 어미새들,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2014. 3. 18.
별 하나 달 하나 별 하나 달 하나 권말선 누구의 그림인가...... 까만 서쪽 하늘엔 씻은 듯 맑은 얼굴의 별 하나, 달 하나 그렇게 둘 뿐이다 먼, 먼 공간의 거리 검은 여백으로 펼치고 희끄름 산그림자 한 줄 들러리 삼아 더 가까워지지 못함을 아쉬워 하면서도 이만큼의 거리가 차라리 나은거라고 애써 미소 지으며 그윽히 바라보는 정 깊은 두 눈빛! 까만 밤 하늘엔 떨어져 있어 아름다운 별 하나 달 하나 그렇게 둘이 있고, 어두운 이 거리엔 떨어져 있어 아쉬운 당신과 나 이렇게 둘이 있다. 2014. 3. 18.
4살의 겨울 4살의 겨울 권말선 눈이 많이 내려서 시골쥐가 마당에 동글동글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와! 여우는 눈사람이랑 눈싸움도 하네요. - 나도 눈사람 만들고 싶은데! 조금 있으면 날씨가 더 많이 추워져서 눈이 펑펑 내릴거야 그러면 우리 나영이도 밖에 나가 눈사람 만들 수 있어요. - 지금도 추운데 눈이 안왔어! 눈이 안와서 서운했구나, 빨리 눈사람 만들고 싶어요? - 나도 장갑끼고 눈사람 만들어서 예쁜 눈도 붙여 주고, 코도 만들어 줄건데! 그래? 눈 많이 오면 나영이도 엄마랑 아빠랑 예쁜 눈사람 만들어 보세요. 그럼 우리 오늘은 동그란 공으로 알록달록 눈사람 만들어 볼까? - 근데 선생님, 눈은 언제 와요? 빨리 오면 좋겠다! 2014. 3. 18.
눈 쌓인 풍경 눈 쌓인 풍경 권말선 밤사이 함박눈 내려 쌓이면 마을은 그대로 한 폭 그림이 된다 마당을 조심스레 나와 골목에 서서 휘- 고요에 묻힌 마을을 둥글게 둘러 보며 하얗게 정지된 온 세상을 욕심껏 가슴에 그려 담는다 굴뚝의 연기 발자국 한 점 없는 눈밭 웅크린 낮은 산의 굴곡 시리고 하아얀 무게를 견디는 고목들 그리고 그 속의 나 얕은 산 아래 소박한 마을의 눈 쌓인 풍경은 지울 수 없는 아련한 한 점 그리움이다 2014. 3. 17.
어느 눈 내리던 날의 기억 어느 눈 내리던 날의 기억 권말선 한겨울, 새벽인데 잠에서 깼다. 그대를 만나기로 약속된 날 설렘을 못이겨 혼자 몰래 마당으로 나왔다. 아, 차갑고도 따뜻한 기운! 세상이 두껍고 하얀 담요 아래 고요히도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길을 걸어 가로등 환한 그 아래에 섰다. 눈은 아직도 모자라단 듯 소록소록 내리고 내리고 또 쌓였다. 불빛을 가만히 올려다 본다 비밀을 들킬새라 하늘은 아득한 곳으로 달아나 버리고 눈송이만 보송보송 연신 내렸다. 그 날은 새벽부터 몹시 설레었고 꿈에도 그리던 그대를 만났으리라 우리는 영화를 보았거나 산책을 했거나 차를 마셨으리라. 허나 세월 지난 오늘에 와 기억 남는 건, 가로등 붉은 빛 사이를 무심히 흔들리며 천천히 내리고 내리던 하얀 눈송이 눈송이들 뿐. 2014. 3. 17.
푸른 밤 푸른 밤 권말선 비밀 하나 알려 줄께 있잖아... 노을이 오지 않은 어느 날의 초저녁 하늘 빛은 푸름이야 하늘 가에 멋대로 뻗친 나뭇가지는 푸름에 지친 검정이고 흠뻑 물 먹은 물감을 후우 불면 도화지 가득히 퍼지는 색깔처럼 푸름은 하늘 가득히 와르륵 번져 나가지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젖히고 저녁 하늘을 보면 짙은 푸름은 점점 짙어지고 더욱 짙어져 꿈결처럼 아득히 사라지는 짙푸름이 되는거야 비밀 하나 알려 줄께 삼십몇년만에 딱 한 번 초저녁 하늘 빛이 파아랗게 피어난단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오늘인거지! 저기 바로 저-기서 시작되는 푸름을 보렴 아...! 실은 나도 처음 보는 푸른 밤이야 참, 파랗구나 파아랗구나 2014. 3. 17.
서른아홉 서른아홉 권말선 내 나이 서른 하고도 아홉 봄날의 따사로움의 소중함을 알고 여름을 견딜 수 있게 되었지 맘 휘둘리지 않고도 그대로의 가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겨울은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 시간과 세월의 차이를 느낄 수 있고 고통도, 기쁨도 삶 속에 범벅이 된 채 언젠가는 지나가고... 마침내는 또 다른 환희가 오리란 걸 조금씩 깨닫게 되는 나이 조급한 기다림과 안달했던 감정에 여유를 물들이려 하늘과 산과 꽃들에 마음 기대어보는 나이 손가락 사이로 스륵 빠져나가는 찰랑대던 어린 날의 환상과 소심하게 혹은 대담하게 선택하며 살았던 젊은 날의 열기와 이제는 아쉽지 않게 악수하며 이별할 수 있는 나이 그리고 더 많은 추억을 회상할 늙은 어느날을 위하여 다시금 멋진 이야기들을 준비해야 할 나이. 2014.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