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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까치와 뱀과 밤나무는 몰랐던 이야기

by 전선에서 2024. 7. 31.

까치와 뱀과 밤나무는 몰랐던 이야기

권말선


우리가 마주 보고 앉아 웃던 날에
그녀는 창밖만 보면 까치를 찾았고
까치처럼 볼록 퉁기는 목소리로
어, 까치가 새로 집 짓는다
어, 오늘은 까치가 세 마리네
저 까치 두 마리 서로 싸운다
고 조잘댔지, 까치 까치 까치 그랬지
우리가 마주 앉아서도 웃지 못할 때
나는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다
어제 밤비에 논과 논 사이 도랑물
콸콸 불어난 걸 새삼 놀라워하며
저 물에 뱀 몇 마리 떠내려가겠네
며칠 새 도랑 다시 홀쭉해졌을 땐
뱀 몇 마리 젖은 풀숲 슥슥 헤치겠네
뱀 이야기 속으로만 뱀 뱀 거렸지
둘이 철부지처럼 좋아라 웃던 날에
창밖은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났고
놓친 접시 조각에 베인 듯 아플 땐
봄 지나 또 여름이었지
남이야 상처로 쓰리건 말건
까치는 뱀은 풀꽃, 밤나무는
제멋대로 오가고 자라고 맺히고

우리가 보았던 창밖의 풍경
어쩌면 그들이 주인공이고
우린 그저 스치는 잠시의 배경이었을까
그저 스치는아아, 그뿐이었을까
까치집 나무 조각 어느 틈새서
도랑물에 쓸려 누운 풀잎 밑에서
밤나무 가지를 달리는 애벌레에 밟혀
사랑, 바보처럼 주저앉아 운대도
아랑곳없이 창밖은 여전히
여전하고 여전한데

창을 통해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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