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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돌탑

by 전선에서 2024. 9. 4.

돌탑

권말선

저녁이 내리고도 한참이니
저린 다리를 펴고
이제 그만 일어서자

너와 둘이서 소소하나 보암직한
그런 돌탑 하나 쌓고 싶었나 보다
가난한 너와 내가 만나
마음 모아 만드는 무엇
그거 하나 가지고 싶었나 보다
평평하고 동그랗게 바닥을 다지고
오며 가며 하나씩 쌓아 올리는 동안
우리들 사연 다소곳 깃들
딱 우리 키만큼의 그런 
돌탑 하나

한 입 베먹다 말고 놓고 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탑 앞에 쪼그려 앉아
아무렇게나 쏟아진 물음표들만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아이스크림처럼 
무너진 채로 두고 가자고
그러자고 한다

내려앉은 어둠 위로 달이 오르고
따라오던 그림자 간간 뒤돌아봐도
괜찮다, 괜찮다 달래며
절뚝 걷는다
아침이 올 게다
또 저녁이 또 아침이
날이 흐를 게다
잊었다 잊었다 나는 잊었다며
그냥 걸을 게다

먼 먼 언젠가 
순한 풀꽃 하나
거기 깃들라

돌탑, 화엄사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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