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우아한 패배의 디딤돌
<분석과 전망>김정은 위원장, 미국에 어떤 디딤돌을 마련해줄 것인가?
2019 북미정세 발전은 필연
연말이 되자 정세분석가들이 2019년 북미정세 전망과 관련해 많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미협상이 잘 풀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 급진전한다는 것에서부터 그 반대로 협상 결렬로 2017년과 같은 대결 국면으로의 복귀할 수 있다는 것까지 그리고 현재와 같은 교착상황의 지속 아니면, 어중간한 타협으로 협상을 깨지도 급진전시키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 등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다 부질 없는 것들이다. 2019년 정세전망은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한 올해의 정세흐름이 이미 다 확정해놓고 있다. 북미관계의 본질을 비롯해 특히 현 시기 북미대결전의 성격을 제대로 꿰 차고 있다면 2019년 정세를 전망해보는 일은 그리 복잡한 작업이 아니다.
일단, 대결국면으로 회귀는 없다. 지난 시기 대결국면은 미국이든 북이든 전쟁을 실제 염두해 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북이나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전쟁을 걸 수가 없게 되었다. 신년사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획기적인 정세전환이다. 이른바, 불가역적 정세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정세를 주도하는 과정은 미국이 대결국면으로 회귀할 수 있게 하는 요인들을 미국 스스로 하나 둘씩 뽑아내는 과정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정세 흐름을 주도하면서 또 하나 확정해준 것이 있다. 2019년 북미정세 발전을 필연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그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6.12북미정상회담에 앞서 핵시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 핵시험장 폐기 조치 등을 취했다. 선제적 비핵화 초기 조치로 불리워졌다. 세계인들이 충격에 빠져들었다. 미국 내 주류 전문가들은 의심을 했다. 사실, 의심이 아니었다. 모양새만 의심이었을 뿐 충격의 또 다른 형태였다. 오랫동안 반북적 분석으로 활동과 생명을 유지시켜왔던 관제 전문가들은 카터 전 대통령이나 세계적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 그리고 대북전문가 조웰 위트 등이 합리적이고 실용주의적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사실을 이야기했다는 점 때문에 ‘친북’으로 내몰려 소외당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었다. 그 전문가들로서는 자신을 신뢰해왔던 애청자들이나 애독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파를 던진다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전문가들은 어쩔 수 없이 언론에 김정은 위원장의 선제적 조치를 의심하고 왜곡하는 기조의 주장을 내놔야했던 것이다.
의심하는 전문가들일수록 김정은 위원장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가 갖는 실질적 의미는 물론 정치전략적 의미도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는 미국이 북미적대관계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걸음을 걷게 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미국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첫걸음을 위해 내준 디딤돌이었던 셈이다.
2019년 정세발전이 물론, 편편하거나 순탄하게 전개될 리는 없다. 적잖은 우여곡절을 동반하는 가운데 정세발전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 필연이다. 이유는 잘게 쪼개면 두 가지다. 북미대결전이 70여년 넘게 지속되었다는 것이 그 하나다. 또 하나는 미국이 전쟁의 패전국은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 결과해낼 북미대결전 종식은 세계사적으로 보면 미국에게 제국주의 사멸의 길을 내주는 의의를 갖는다. 제국주의가 사멸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은 그 방식이 연착륙적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주의적 반동을 여러 가지 형태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
2019년 정세발전이 우여곡절을 동반하게 될 것은 결국, 미국 내 반발 때문이다. 반발은 북의 실체를 알고 받아들인 트럼프 대통령과 그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미국 내 반북진영에게서 주로 나온다.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대세는 북이 지난 해 11월 27일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곧바로 12월 21일 전략국가를 언급한 뒤 올해 전반 정세주도를 하면서 결정이 난 상태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그랬듯이 내년에도 세상이 보란 듯이 정세를 주도해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내년,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노정을 어떻게 만들낼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묻는다. 여기에 미 국무부가 답을 준다.
답은 핵동결에
“당면목표는 핵동결”
미 국무부가 최근 펴낸 <동아시아 태평양지역 합동 전략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 가능한 북의 비핵화(FFVD)를 장기적인 목표로 정하면서 단기적인 목표로 핵동결을 설정한 것이다. 미국이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이래 당면목표로 핵동결을 직접 설정한 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놀랄만하다. 물론, 세세하게 들어가면 놀랄 것이 없다.
북이 핵무력 완성을 하고 난 뒤 북미협상의 조짐이 만들어지자 미국은 CVID를 띄웠다. TV나 라디오를 틀고 신문을 들추면 CVID가 넘쳐났다. 세계의 핵과학자들 그리고 북핵의 발전수준과 북핵의 실체를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내내 비웃었다. 물론 웃음 소리가 겉으로 새나오지는 않았다. CVID는 전쟁에서 승자가 패자에게 요구하는 조건이다. 미 국무부는 결국, 스스로 CVID 폐기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FFVD를 가져다 놓았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4.27판문점 선언 그리고 6.12북미공동성명에 적시된 ‘한반도 비핵화’의 영어명이 FFVD다. 미국은 그렇듯 현실을 받아들였다. 반북진영의 대표주자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행보의 부침을 따라가 보면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패퇴한 미국의 반북진영들은 그러나 ‘핵 리스트’ 제출을 들고 나왔다. 자존심 상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핵 리스트’ 제출 요구는 미사일을 쏠 타격 좌표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핵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웃었다. 방식은 여전히 속으로였다. ‘핵 리스트’ 제출 요구는 당연하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1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직접 나서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기 전까지는 핵리스트 제출을 요구하지 않겠다면서 폐기를 하고 만 것이다.
미국이 CVID 폐기에 이어 ‘핵리스트 제출’을 페기한 것은 미국이 북핵의 발전 수준과 실체는 물론 특히 북을 전략국가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그 이외에 다르게 부여할 의미는 없다. 패배의 다른 형태다.
미 국무부 전략보고서가 핵동결을 북핵문제 당면목표로 설정한 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핵동결은 북의 현 핵발전 수준과 실체에 기초해 마련된 것으로 한반도비핵화를 세계비핵화와 연동해 실현하는 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현실적 공정이다. 그 이외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장기적이고 전략적 과제 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잘 파악한 전략보고서는 ‘핵동결’ 의제를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그럴듯한 수사 한 자락을 악세사리처럼 동원하고 있다. ‘국제적인 대북 최대 압박 작전 강화’가 그것이다. 북핵 해결의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대 압박 작전을 계속하고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흔히 접하는 정치수사다. ‘핵동결’ 의제의 부각을 막지 않으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우성이 정가를 휩쓸 것을 전략 보고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정치수사를 내온 것이다. 연합뉴스가 26일 기사 제목을 <美국무부 전략보고서 "국제적 대북압박 지속·강화">로 잡은 결정적 배경도 이 때문이다. 미국과의 정치지형상 관제 전문가 혹은 사이비전문가를 앞세울 수 밖에 없는 연합뉴스는 미국의 관영언론이자 대표적인 반북언론인 <미국의 소리방송>의 <국무부 전략보고서 “대북 정치·경제 압박 강화할 것”>이라는 기사제목을 제목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다.
우아한 패배의 디딤돌
전략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핵동결의 내용들은 특별할 것들이 없다. 핵과 탄도미사일 시험 중단, 핵분열 물질 생산의 중단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 핵 확산 방지도 집어넣었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선제적인 비핵화 초기조치로 이미 취한 것이거나 이후에 가능하다고 언급한 내용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전략보고서는 북에게 구걸을 하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 초기조치에서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가 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9년에 미국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데 필요한 새로운 디딤돌을 전략보고서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디딤돌은 70여년 북미대결전에서 패배한 미국이 디디게 될 것으로 고전적으로 전쟁에서 항복한 패전국이 받게 되는 디딤돌과는 다르다. 패배의 디딤돌이기는 하되 우아한 모양새를 띠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핵무력을 완성하고 전략국가로 발전한 북으로서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것들이다. 이미 신호를 보내기도 했었다. 북에 최고 가는 초현대식 핵 기지인 영변핵기지 폐쇄 용의를 밝힌 것 등이다.
2019년 새해,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에 우아한 디딤돌을 내주게 될 것이며 미국은 패배의 그 디딤돌을 딛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아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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