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 비핵화에 시간표는 없다’
<분석과전망> 현실을 받아들이는 미국, 진전될 북미관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 비핵화에 2년이나 3년, 또는 5개월이 걸리든 상관 없다’며 ‘북과 시간 게임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 비핵화에 시간표가 없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획기적이다.
명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매우 현실적인 입장이다. 여기에는 현실적이고 근본적이며 구체적인 많은 의미가 질펀하게 깔려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 비핵화에 시간표가 없다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북이 핵보유국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북의 핵 발전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도 반영돼있을 것이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이 지난 한 해 동안 핵무력 완성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서 북이 미 러 중에 이어 사실상 4대핵강국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북 비핵화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북 비핵화에 시간표를 설정, 예컨대, 북의 비핵화 완료 시점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인 2021년 1월로 못 박고 있는 입장에 내려진 철퇴와 같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27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핵무기를 2년 안에 제거하라는 확고한 시간표를 북에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성취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트럼프 정부가 북과 진전을 이루고 싶어 취하는 접근법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북 비핵화에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울러 북 비핵화에 수 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집중했던 북의 핵무력 완성 과정은 한반도 비핵화가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는 것을 확정해준 것이었다. 북 비핵화에 수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은 근본담론 범주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미가 6.12북미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가 지난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주창한 세계비핵화와 연동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트럼프 정부가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다.
북 비핵화에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 문제 타결을 놓고 북미 간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는 현시점에서 대단히 실효적인 의미를 갖는다.
종전선언은 사실 대세고 거의 확정적이다. 곳곳에서 확인된다. CBS방송은 28일 북미대화를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내달로 예정된 4차 방북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제목까지 눈길을 끈다. '폼페이오, 2차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 가능성을 내놓다'였다.
대북제재 해제 전망도 곡절이야 있겠지만 역시 어둡지가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말로는 대북제재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는 하다. 마이크 폼페오 미국 국무장관이 27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장관급 회의에서 관련국들에게 “대북제재는 FFVD를 실현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발언에 이전과 같은 ‘파괴력’이나 ‘무게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부적절하고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면서 반발을 하고 "북한의 점진적인 군축 조치들에 따라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도 "적절한 시점에 북한의 조치에 따른 제재 수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 아베 총리의 행보 역시 돋보인다. 유엔총회연설에서 대북압박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북일관계 정상화를 강조하는 한 것이다. 이것들은 미국의 대북제재 역시 정세흐름 상 필연일 것임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 비핵화에 시간표가 없다고 한 것에는 다른 한편으로는 북이 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시간표’를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였다는 특별한 의미도 담겨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 비핵화에 시간표가 없다고 한 것에 대해 그리고 북이 짜 주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시간표’를 받아들였다는 것에 대해 가장 좋아할 인사는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일 것이다. 비건 대표는 북미핵대결전의 최전선에서 북 협상대표와 직접적으로 협상을 벌이게 될 인사다. 그는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비현실적인 ‘일괄타결’ 방식 때문이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비건 대표로서는 북이 줄곧 요구해 온 ‘단계적’ ‘행동 대 행동’을 협상의 원칙으로 삼은 만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돼 환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북이 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시간표’에 의하면 미국은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를 준비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 북은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 공식화했듯 영변 핵기지 폐기를 더 확고히 예고해주면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불능화하는 조치를 곧 취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현실을 받아들인 미국의 눈에 훤히 보일 것은 북이 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시간표’이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은 북이 짠 그 시간표대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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