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함께 가는 통일’
<분석과 전망> 6.15시대 초창기 때의 구태의연한 주역들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할 것이라는 문정인 특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남북·북미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주한미군을 비롯한 기존 한미동맹 체제를 변함없이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 19일 열린 ‘대화문화아카데미’ 모임 자리에서다. 문 특보는 구체적인 방도까지도 제시했다. ‘북미조약에 통일 후 주한미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집어넣으면 된다고 한 것이다.
문 특보의 이 발언에서 많은 사람들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그리고 북미문제의 본질과 북미관계발전의 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어떤 비현실적이고 그릇된 입장을 갖게 될 수 있는가를 제대로 구경하게 된다.
문 특보는 모임자리에서 북미성명에 'CVID'가 빠진 것을 비판하는 쪽을 겨냥해 그동안 학계 논의과정에서 CVID가 중요하지 않은데 일종의 '신줏단지'처럼 여겼다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문 특보가 사용한 ‘신줏단지’라는 말은 문 특보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비판하는 데 그대로 쓸 수가 있다. 문 특보는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현실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그 무슨 신줏단지 같은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문 특보는 그동안 한미동맹과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한미동맹에 운명을 맡기고 사는 분단적폐세력들로부터 정치공세를 당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곤했다. 추정건대, 분단적폐세력의 그러한 반발이 문 특보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을 공격하는 분단적폐세력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문 특보는 이렇듯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신줏단지처럼 대하는 태세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는 이종석 전 장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대한 비현실적 입장은 19일 평화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18차 '통일한국포럼' 특강에 나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게서도 포착된다.
이 전 장관은 1976년 당시 지미 카터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내걸었다가 끝내 이를 포기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한미동맹의 기초인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철수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미동맹은 냉전 시대의 유산이지만, 한미 간 공고한 자산이기도 하다”며 "한국이 비대칭적 의존 관계인 중국과 관계가 급격히 기울어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장치"라는 말도 했다.
이 전 장관 발언 요지는 주한미군 철수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76년 카터의 미군철수론과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시사는 서로 수평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76년 상황은 당시 북에게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기는 했지만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미관계 개선이 동시에 진행돼 주한미군 철수를 직접적으로 강제하는 환경을 동반하고 있지는 않았었다.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이 주창하는 것은 주한미군 용인이다. 정세가 변하고는 있으나 주한미군을 철수해서는 안되고 정세변화에 맞게 주한미군에게 지위와 역할을 변경해 동북아평화유지군으로 모자를 씌워주자는 것이다.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의 주한미군 용인은 반트럼프진영의 언론에서 CNN 못지않게 정세를 왜곡하면서 트럼프정부의 북미관계정상화에 일정하게 반발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그것과 맥을 똑 같이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협상판에서 '주한미군'의 존재가 장기판의 말(a chit)과 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WSJ는 17일 내보낸 '핵무기와 주한미군의 거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을 높힐 수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다. WSJ는 해외 미군이 갖는 전략적 의의가 전쟁 방지와 미본토 위협 억지 그리고 중국 등 지역적 파워 출현 방지에 있다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의의도 함께 기술하고 있다. 북의 남침 저지와 중국의 남하에 맞서 일본과 대만 등 역내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전진배치라고 했다. 중국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을 막아주는 정치안보기제라고도 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의의가 한반도지배전략의 중추이자 중국의 진출을 억지하는 대중저지전략의 근간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나가 다 아는 주한미군의 그 전략적 의의를 WSJ는 왜 이 시점에 강조하고 나선 것일까? 새삼스럽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에 이어 종전선언이 나오고 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이 나오게 될 때 주한미군철수 문제는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WSJ는 그 때의 주한미군 운명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불안감이 일었을 것은 당연하다. WSJ가 주한미군을 장기판의 말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사설로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한 것은 확정컨대, 주한미군의 이후 운명을 알게 되자 엄습하기 시작했을 그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WSJ는 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까지도 제시했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성격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확실하게 포기하고 한국에 대한 위협을 멈추면 다시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북이 핵 폐기를 하면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변경시킬 수 있다고 한 것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00년 초중반 6.15시대 때 일각이 적극 유포해 회자시켰던 논리다.
자주통일이 답
WSJ의 주한미군 계속 주둔도 이에 기반한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의 주한미군 용인도 현 정세에서는 맞지가 않다. 핵은 무기로서의 핵과 경제로서의 핵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북미는 협상에서 북핵에 대해 경제로서의 핵은 놔두고 다만 핵무기만 없앨 것이다. 강력한 핵보유국인 북의 핵을 원천적으로 없앤다는 것은 핵의 일반원리상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것들은 주한미군 철수가 북의 핵무기 철폐와 조응되는 것임을 확정해준다. 미국의 주한미군과 북의 핵무기의 전략적 값이 같은 것이다. 이는 북의 주장도 미국의 주장도 아니다. 핵이 갖고 있는 일반원리와 북이 도달한 핵 수준 그리고 북미대결전의 본질이 확정해주는 사실이고 현실이다.
결국, 주한미군문제를 북핵폐기 문제와 연동시키는 것이나 그를 통해 주한미군을 지위와 역할을 변경시켜 계속 주둔시킨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가 않다. 옛날 북이 핵 개발하던 시기에나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의 주한미군 용인은 기본적으로 분단체제 하에서 개혁정치 진영이 갖는 기본 입장이다. 분단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분단체제를 용인하는 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을 일정 비판하면서도 미국을 따르고 북과 일정 함께 하면서도 북을 치는 것으로 표현된다.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의 주한미군 용인은 지금의 정세를 6.15공동선언 시기의 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 둘은 지난 6.15공동선언의 남측 주역들이다. 6.15시대에 수많은 공헌을 했다. 하지만 지금 정세는 6.15공동선언이 나왔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북이 핵무력 완성에 기초해 발휘한 주동으로 4.27 판문점 선언이 나오고 이어 6.12북미공동성명이 나왔다. 북의 핵무력 완성을 차치하고서는 판문점선언도 북미공동성명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지금은 한반도의 근본문제와 북미관계의 근본문제가 해결전망을 확고히 열어내고 있는 한반도의 대전환기이다. 한반도 대전환기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의 구태의연함으로 일관하는 옛 6.15인사들에게서 현 시기를 정확히 전망하고 미래를 열어낼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받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 한반도 대전환기라는 새 술이 요구하는 것은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과 입장과 실천태세다.
판문점 선언에 적시되어 있는 ‘자주통일’이 그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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