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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무등이왓에서

by 전선에서 2023. 7. 2.

무등이왓에서

권말선


아이가 무등 타고 춤추듯
엄마닭이 고이 알 품 듯
사랑스럽고 따스한 자태의 무등이왓

그러나 4.3항쟁 때
학살의 불길에 150호 그 큰 마을
전부 타 없어지고 이제는
표지판과 쪽대와 팽나무만
무성한 바람 안고
간간이 밭을 일구는 곳

무등이왓에서 나고 자라 11살에 4.3항쟁 겪으며
토벌대 학살 피해 겨우 살아난 86세 홍춘호 할머니
그때 이야길 들려주신다

무등이왓 팽나무 지금 한 500살쯤 됐을까
옛날엔 나뭇가지가 길을 다 덮을 만큼 자랐고
뿌리가 땅 우로 얼마나 높이 솟아났는지
층계 오르듯 놀고 곱을락*도 하며 놀았지
여름엔 멍석 깔고 앉아 여기서 살다시피 했어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가지 흔들면
열매가 우두두 떨어지고 그러면 그냥
마을 애기들 다 몰려와서 오독오독 맛있게 먹었지
저 뿌리 아래 깊이 난 구멍은 어쩌면
사람들 숨어 살던 굴까지 닿을지도 몰라

할머니 이야기 속 팽나무 아래
한 무리 뛰노는 아이들 그려 보며
여기가 그대로 동화 속이었구나 싶었는데 
팽나무 지나 넓은 밭가에 앉으셔서는

잠복해 있던 경찰이 나타나 사람을
스물아홉이나 죽인 여기가 잠복학살터야
죽창으로 죽이다가 그래도 안 죽으니까
혼군데 모아놔지고 멍석영 불을 붙였어
살려 달라 아우성인데 경해도 소용없지 
할망 하나는 돼지우리에 뛰어들어 목숨은 건졌는데
나중에 보니 서방이영 어멍이영 다 죽고
쪽대밭에 숨었던 나영 동갑내기 큰아들만 산 거야
그땐… 사람 안 죽은 날이 없었어
눈에 보이면 다 죽이던 '검은개' 들이
임산부건 어린애건 짐승처럼 죽였지
나하고 엄마 아부지는 '검은개' 피해 
큰넓궤에서 박쥐처럼 숨어 50일을 살았어
굴속은 물도 없고 빛도 없고 소리도 못 내는데
어느 날엔 하늘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버지, 하늘 한 번 보여줘!”
울며 매달리기도 했어

아아, 하늘이 보고팠다는 11살의 어린 춘호 대신해
그날의 학살자들- 서북청년단, 군과 경찰, 이승만,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로 표적 찍었던 미국에게 따져 묻고 싶다
그렇게 깡그리 죽이고 태우던 학살의 주검 위에 세운 나라,
초토화의 몰살 끝에 삼은 식민지
제주 땅 곳곳에 남은 '잃어버린 마을',
제주사람 가슴마다 박힌 고통 앞에
지금 너희 정녕
만족스러우냐고
사람의 양심이란 없었던 '검은개'들에게
과연 앞으로의 밝은 날이
있을성 싶냐고
그때 다 죽여 없애려던 분단반대, 자주통일, 미국반대
그 외침 다
죽인 것 같으냐고 
다시 살아 쩌렁한 이 외침
들리지 않느냐고

제주 동백
저 붉은 꽃잎은
한 번도 퇴색한 적 없었으니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도
동백꽃처럼 꼭 다시 살아나리니
‘다시 찾은 마을 무등이왓’
그날이 오면
어린 춘호 꼭 안고 또 무등 태우고
덩실 더덩실 춤춰야지
그때 잠들어야 했던 순한 영혼
모두 깨워
울고 또 웃고
잊었던 동화, 멈췄던 동화
함께 그려봐야지
아무렴, 꼭 그래야지


* 곱을락 : 숨바꼭질의 제주 사투리

무등이왓 팽나무, 몇 살이나 됐을까?
잠복학살터 앞에서 증언하시는 홍춘호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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