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 칼럼>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찾습니다
10월 9일, 꼭 찾을 사람이 있습니다. 세종대왕? 아닙니다. 10월 9일은 한글날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 분단체제를 한 층 공고화하게 만든 전두환 정권과 미국의 합작극 ‘버마(미얀마) 아웅 산 묘소 테러’(1983)가 일어난 날입니다. 35년 전 오늘 일어난 이 사건으로 남한에서는 장관급 4명 등 정부 인사들과 기자 및 경호원 등 21명이 폭사했고, 버마인 4명이 사망했습니다. 미국은 이 사건을 시작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는 작업에 착수하는 등 북한을 국제사회의 미아로 만들려는 음모가 가속화됐습니다.
찾는 사람은 바로 이 사건의 주범이라는 강민철(본명은 강영철이라고도 함)입니다. 바로 아래 사진 왼쪽 인물입니다.
위 문건(오른쪽)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첫 해이면서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꾼 해인 1998년 11월, 국정원이 버마에 수감돼 있던 강민철을 면담한 직후 작성한 보고서 중 ‘강민철 인적사항’이고, 왼쪽 사진은 이 문건에 있는 강민철의 사진입니다. 놀랍게도 ‘83. 10. 사건 당시 모습’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에서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이 ‘강민철 인적사항’ 이라는 문서는 2010년 극우 논객 조갑제 씨에 의해 ‘특종’으로 공개됐습니다. (월간조선2010년 6월호)
강민철의 얼굴이 이처럼 선명하게 공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때까지 강민철은 체포 직후 병원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코리언인지 버마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얼굴로만 알려졌습니다. 그 사진만으로는 누구도 그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름조차 가명을 썼으니까요.
( 범인 셋 중 가운데가 강민철)
그런데 사건 발생 27년 만에 ‘북한에서 온 테러리스트’라던 강민철의 ‘사건 당시 모습’이 공개된 것입니다. 끔찍한 테러의 범인이라는 북한 공작원이 이런 차림으로 찍은 사진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 북한에 몰래 들어가 이 사진을 훔쳐왔을까요? 아니면 탈북자가 갖고 왔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해, 이 사진은 강민철을 ‘아웅 산 작전’에 투입한 조직만이 내 놓을 수 있는 사진이며, 따라서 이 사진은 강민철이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남한의 특수(북파)공작원임을 말해주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이 사진이 공개된 과정을 되짚어 봅니다.
먼저, 1998년 11월 국가정보원 해외담당차장 라종일 씨가 버마에 가 강민철과 우리 측과의 면담을 요청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당시 국정원의 대북 또는 대공 조직은 김대중 정부 출범에 즈음해 - 아마도 버마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 강민철을 국내로 데려오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97년 12월, 조선족인지 탈북자인지 모를 ‘자칭’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안기부 직원과 결혼시킨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저들은 김현희를 ‘반공반북 적대의 아이콘’으로 키운 것처럼, 강민철도 국내로 데려와 김현희처럼 활용하고 싶었을 겁니다. 남북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논하는 시대에 분단적폐의 쐐기가 뽑혀나가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것이지요.
그때 작성된 이 문건이 12년만인 2010년 유출된 것은, 2006년부터 강민철을 국내로 데려오려는 국정원 내 특정 세력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강민철 송환에 앞장선 이가 바로, 검사 출신이면서 이 버마 사건 때 국정원에 들어갔고, 김현희 사건 때는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을 지낸 정형근 씨입니다.
저들이 2006년 강민철을 데려오려 한 것은 당시 북한이 버마와의 복교를 위해 물밑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버마 사건에 주동적으로 개입했을 국정원 대북공작 조직은 강민철의 신병 처리에 고심했겠지요. 1983년 체포 당시 “나는 영등포에 어머니와 살고 있고, 서울 성북국민학교를 나왔다. 북한에는 간 적도 없다”고 했던 강민철이 또 다시 말을 바꿀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국내 송환 약속을 받고 “나 북한 공작원이요”라로 말을 바꿨을 터인데, 자그마치 20여 년 동안 타국에 방치돼 있었으니 강민철의 속이 어떠했을지는 안 봐도 빤한 일이지요.
1983년 체포 당시 강민철은 계속 “서울에서 왔다”고 주장했고, 그 때문에 버마 수사당국은 중간수사 발표(1983.10.17) 때 남.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코리언이 범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전두환 정권은 바로 다음날인 10월 18일 안기부 대공수사국 성용욱 국장(나중에 국세청장 지냄)과 한철흠 과정 등 2명을 버마로 급파했고, 이들은 강민철과 만나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설득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건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던 장세동 씨나, 나중에 국정원 차장을 지낸 라종일 씨 등이 책을 통해 밝힌 내용입니다.)
그렇게, 아마도 몇 차례의 회유 공작 끝에 강민철은 11월 3일 “나 북한에서 왔소”라고 말을 바꿨고, 바로 다음날 버마는 북한과 단교를 선언하면서 자국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들에게 48시간 내 추방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사건은 ‘북한의 공작’으로 종결 처리됐었지요.
그러나 북한은 매우 힘은 외교적 노력 끝에 2007년 버마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듬해인 2008년 5월 강민철은 옥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정말 그가 사망했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미국의 AP 통신이 출처불명의 기사를 한 줄 날렸을 뿐입니다. 이후 누구도 강민철의 사망을 확인한 바 없습니다. 유골은커녕 유품 한 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쩌면 사망설이 나돌 즈음 국내에 몰래 들어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강민철의 송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강민철의 송환 공작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강민철이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습니다. 강민철이 사망했다는 2008년은 이명박 정권 첫 해입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0년 본격적으로 노무현 정권을 매도하기 시작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첫 해이고, 강민철이 사망한 - 것으로 처리된 - 2008년부터 이듬해인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할 때까지는 강민철 이야기를 꺼낼 계제가 아니었겠지요.
저들은 2010년부터 약 2년 동안 집중적으로 노무현 정권을 ‘좌파 정권’으로 매도했습니다. 정형근 씨 등은 “좌파 정권이 강민철의 송환을 막았다”며 떠들고 다녔습니다. 이때, 강민철 면담 기록 보고서 중 그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문서 한 장이 조갑제 씨를 통해 일반에 유출된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을 매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우경화시키려는 언론플레이에는 우파 논객과 매체들이 적극 가담했지요.
이 때 또 하나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강민철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으로 띄우는 작업입니다. 1998년 11월 강민철 면담에 관여했던 라종일 씨가 2012년 중앙Sunday 인터뷰 등을 통해 강민철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인물”이라는 식으로, 연민과 동정을 보내고, 이듬해인 2013년 그와 같은 논지의 책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펴냅니다. 이 책은 이 나라 북파공작원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獻詞)입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 및 그 가족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감사의 글. (졸저 <1983 버마>와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면 아웅 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고, 누가 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저들은 이 문건에 들어 있는 강민철의 사진이 공개됐을 때의 파장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권으로 매도하면서 강민철을 다시 한 번 북한 공작원으로 규정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렸겠지요. 깜도 안 되는 자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자작테러에 의혹을 품는 이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사건의 진상은 절대로 드러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을 겁니다.
이 문건의 출처는 국가정보원이지만, 국정원은 이 문서에 실린 사진에 대해서는 ‘나는 몰라’ 하는 입장입니다. 강민철의 사진의 존재 유무와 출처를 물었지만(정보공개청구 2018.5.24) “국가정보원이 보유 관리하고 있지 않은 정보”(‘정보부존재’)라는 답변을 내 놓았고, ‘강민철 인적 사항’ 문서의 공개 요청에 대해서는 “국가안보상 정보공개 적용이 제외되는 사항” (2018.6.8)이라는 입장입니다. 문서는 자기네들이 만들었지만 사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이 사진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은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전두환 정권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과 문서의 입수 경위에 대해 조갑제 씨에게도 물으려 메일을 보냈지만, 메일을 열어 보고도 답신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민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가 버마에서 체포됐을 때 “나는 영등포에 어머니와 살고 있고, 서울 성북국민학교를 나왔다”고 진술한 것이 전부입니다. 위 ‘강민철 인적 사항’이 들어 있는 ‘강민철 면담 보고서’에는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이 들어 있겠지요. 아무튼 위 문서에 적힌 대로 그가 1955년생이라면 강민철은 1960년대 초등학교, 197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1980년 전후 특수부대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강민철을 기억하는 분께서는 아래 메일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2018-10-09)
<1983 버마> 저자 강진욱(kjwook11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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