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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북 공세 지연술책이냐 본격대화 수순이냐

by 전선에서 2017. 12. 14.


북 공세 지연술책이냐 본격대화 수순이냐

<분석과전망>틸러슨의 탐색대화 그리고 북의 역제안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은 12일 조건 없는 대북대화라는 놀랄만한  제안을 하면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수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의미로운 것도 있지만 진정성이 부족한 측면도 있어 따져 볼 게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수년간 앞세웠던 비핵화라는 대화의 전제조건을 쓰레기통으로 내던져버렸다는 것이다. "핵·미사일프로그램을 포기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한 것이다. 중단이 아니라 포기다. 북의 ICBM 화성-15형이 몰고 온 사변이다. 

물론, 원칙으로서 비핵화를 폐기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 전혀 중요치 않다.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데다가 이후 핵전력 강화까지 천명한 북이 비핵화를 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틸러슨이 한 말 중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목해도 좋을 법한 매우 특별한 것이 있다. 북의 핵 이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냉전시대를 연상시키는 봉쇄·억지 전략은 버려야 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봉쇄와 억지전략으로는 북의 핵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북이 사실상, 세계4대 핵강국으로 진입한 조건에서 미국에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북에 의한 본토 위협이 아니라 북에 의한 핵 확산 문제라는 것을 실토한 셈이다. 

미, 러, 중 세계의 3대 핵강국들은 자신들의 핵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핵확산방지조약(NPT)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북핵이 전략적으로  갖는 중요한 의미 하나가 확인된다. 이 NPT체제를 송두리째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이 북핵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북 핵미사일 능력고도화에 대한 온갖 불합리한 제재 조치에 일정 동의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핵강국들이 북의 핵 확산 문제에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 방도는 북을 세계4대핵강국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북을 NPT체제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진정한 사변이다. 북 핵 이전 위협을 해소하는 데에서 이 이외에 다른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구체적으로는 ‘핵 군축’이다. 북을 포함하는 세계4대핵강국이 이후 구체적으로 추진해야할 ‘핵 군축’만이 북의 핵 이전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틸러슨은 결국, 북의 핵 확산 위협을 해소하자면 봉쇄.억지전략은 통하지 않으며 오직 ‘핵군축’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핵이 이후 세계비핵화 즉, 한반도비핵화를 실현해가는 전략적 경로가 핵군축에서 시작될 것임을 엿보게 해준다.  

틸러슨의 말에는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거쳐서 나온 것인가 하는 것이다. 틸러슨이 "대통령도 이 문제에 있어 매우 현실적"이라며 트럼프도 자신과 비슷한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는 했지만 선뜻 신뢰하기 어렵다. 둘이 대북태세와 관련 서로 충돌한 적이 많아서다. 틸러슨이 대북 대화 입장을 강조했을 때 트럼프는 "시간 낭비"라고 공개면박을 하기도 했었다. 미 언론에 틸러슨 연내 해임 가능성이 회자되었던 이유다. 틸러슨이 트럼프와 공유되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 틸러슨의 해임사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공유가 되었다해도 틸러슨의 말에는 결정적으로 못 미더운 측면이 있다. “상대가 누군지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에서 확인된다. 틸러슨이 제안한 대화의 성격과 위상을 잘 규정해주는 대목이다. 본격대화가 아니라 협상에 앞서 상대를 탐색하는 대화라는 의미다. "사각 테이블인지, 둥근 테이블인지에 흥미를 갖는다면, 그것에 관해 얘기할 수도 있다“고 한 것도 틸러슨이 제안한 대화가 탐색대화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틸러슨이 오직 탐색대화만을 제안한 것이라면 치명적일 수 있다. 북의 핵전력 강화를 늦춰보려는 전술적인 꼼수라는 점에서다. 북의 공세를 지연해보려는 술책일 수 있는 것이다. 북이 허용할 리 없는 얄팍한 전술구사다.  

지금의 북미 간 문제는 탐색대화로 시작해서 풀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핵무력 완성에 도달한 북핵문제는 이런 저런 전술적 범주에서는 다뤄질 수 없는 전략적 문제인 것이다. 틸러슨이 ‘그냥 만나자’ 혹은 ‘날씨 이야기라도 하자’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넋두리에 불과하다. 

틸러슨의 말에 넋두리는 더 있다. "만약 대화 도중에 시험이나 추가 도발을 한다면 대화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대화를 하려면 일정 기간 (도발) 휴지기가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본질은 북이 ‘도발’하고 말고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북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이후 핵전력 강화로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공언한 것만 해도 적지가 않다. 전략잠수함탄도미사일 북극성-3형이 있는가 하면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의 심장부에서 언급한 ‘태평양상에서의 역대급 수소탄 시험’이 있으며 우주개발 차원에서 쏘아올릴 인공위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고각이 아닌 실각으로 발사해 미 대륙을 넘어 대서양에 탄착시킬 화성-15형을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세계 최강의 핵강국으로 전진·비약해 최후의 승리를 앞당겨내야한다”

김정은 북 노동당 위원장이 12일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핵무기들을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확고한 물질기술적 토대를 마련했기에 ‘세계적인 핵강국 전열’에 들어섰다는 ‘역사적 결론’을 내리면서 밝혀준 전략방침이다. 

이에 따르면 틸러슨의 대화제안에 대해 북은 탐색대화라는 것을 문제 삼아 마뜩치 않아해할 공산이 크다. ‘지금이 날씨 이야기할 때냐’라면서 말이다. 

북은 미국이 집중하고 충실해야할 현실을 보여준다면서 ’핵전력 강화’로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틸러슨의 탐색대화를 수용하되 그것을 포괄하고 뛰어넘는 더 큰 의미와 내용의 역제안을 할 수도 있다. 날씨 이야기를 비롯한 넋두리 중심의 탐색대화가 아닌 본격대화를 하자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 폐기나 주한미군철수 등 북이 강조할 본격대화의 내용이 무엇일지 예상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격대화일 경우 지금 북미 간에는 틸러슨 제안을 뛰어넘는 심각한 수준의 물밑대화가 진행중일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흐릿하게 그리고 쭈뼛쭈뼛 흘러나오는 과정을 거쳐 내년 1월 1일, 보다 또렷하고 확고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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