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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봉천동 해남식당

by 전선에서 2019. 2. 6.


봉천동 해남식당


권말선


북적북적한 시장골목 벗어나

조금조그마한 가게들이 즐비한 한 편에

보일 듯 말 듯 자리 잡은

해남식당

테이블 세 개에 구들마루 위 밥상 하나

손님 여남은 앉으면 꽉 차는 곳

바쁜 점심때면 서로 여유와 배려를 갖고

자리 나길 느긋이 기다렸다가

주인장 차려주시는 밥상 깨끗이 비우면

배도 마음도 포만감에 푸근해지는 곳

조기구이 때론 달걀프라이 때론 제육볶음

배추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묵은지

젓갈이며 나물반찬 고등어찜 코다리찜

김구이 매생이무침 파래무침 멸치볶음

생선찌개 육개장 김치국 미역국

어느 날에 가도 어떤 반찬을 먹어도

늘 한결같이 맛있는 이유는

친정 해남과 인근 고장에서 난 재료들로

직접 만들어 주시는 남도 아주머니 손맛덕분

“넘들은 때깔 곱다고 중국산고추가루 섞어 쓰라지만

울 엄니 보내주시는 고춧가루 쓰는 게 훨 낫지

김도 고흥김으로다 구워 짤라놨더니 손목이 좀 시려도

손님들이 구수하다고 좋아하시니 기분 좋지,

오시는 손님들 한 끼 맛있게 드시면 그걸루 됐어”

밥이 아닌 마음을 다 퍼주시려는 듯

엄마처럼 이모처럼 넉넉히 웃어주시며

무치고 볶고 끓이고 튀겨서

한 상 푸짐하게 내 놓으시는데

밥값은 겨우 5,000원

먹는 우리야 좋지만 이렇게 훌륭한 점심

5,000원에 팔다가 혹시 망하지는 않을까

그러느니 차라리 밥값을 올리셔도 되는데

먹으면서도 괜히 걱정하게 되는 곳

주변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채소가게 미용실 옷가게 일하시는 분들도

가난한 여성농민단체 활동가들도

낮예배 기도마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점심때면 지금쯤 빈자리가 있을까

오늘은 어떤 반찬 주실까

설레는 기대감으로 달려가면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시니

엄마 손맛 그리워하는

누구에게나 먹이고픈 집밥 한 끼

봉천동 해남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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