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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9

[시] 안녕, 온유 안녕, 온유 권말선 안녕, 온유교대역 지하철을 내리면 보이는너의 초상을 마주한 어느 날부터다짐, 약속, 기억의 고리인 양자꾸만 네 이름 불러본다 안녕, 온유하고 불러 보면 빙긋 웃는 듯네 볼은 살짝 동그랗게 부풀고부푼 네 볼을 가만히 쓸어보면부드런 온기를 넘겨주는 너 안녕, 온유갑판 위에서 기다렸다면 살았을 텐데울음소리 비명소리 들리는 곳으로너, 구명조끼도 없이 친구들 곁으로돌아올 길 대신 택한 친구들 곁으로 너는 수많은 발길 속 초상으로 고요히찾았느냐고 나를 향해 묻고 있는데나는 이렇게 걷고 뛰면서도 네 앞에 서서 아무런 답이 없구나 진실을 끌어올리지 못해네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이냐진실을 끌어내기 위해너를 뒤로하고 걷고 또 뛰는 것이냐 안녕, 온유많고 많은 까만 눈동자의 온유들아 파묻힌 모든 진실 .. 2019. 9. 30.
[시] 작은 별도 있었음을 작은 별도 있었음을 권말선 세월호 잠수사 바다속으로 아이들 데리러 갔다가 둥둥 떠다니는 먹다 남은 젖병 공갈 젖꼭지 아, 보았다지 세월호 그 바다에서 이름조차 건져내지 못한 작은 별은 지금 어느 하늘가에 젖은 눈으로 잠들어 있을까 416 이후 바다는 소금물 보다 짠 눈물 출렁이는 눈물 속에 우리가 미처 이름 불러주지 못한 작고 여린 별이 있었음을 기억해야해 그렇게 스러져간 뭇별도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해 세월호 그 바다에 작은 별들도 있었음을 2016. 3. 5.
100일, 광화문에서 100일, 광화문에서 - 권말선 이미 젖은 몸이나마 마구 쏟아지는 비 피한답시고 작은 우산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나는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낡아진 구명조끼 하나 입고 아니 그마저도 없이 두렵고 춥고 떨리고 보고팠을 텐데 피할 곳도 없이 움직일 수도 없이 두렵고 춥고 떨리고 너무도 간절히 보고팠을 텐데 너는 아직 집으로 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구나 다리가 아프다고 배가 고프다고 비에 다 젖었다고 호들갑을 떨지 못했다 엄살을 떨지 못했다 네 앞에서 희망의 끈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 매달리다 손가락이 부러졌다. 손톱이 빠져나갔다. 그러느라 얼마나 울었으랴 두렵고 아프고 힘들었으랴 얼마나 사무치게 보고팠으랴 아, 분홍꽃 같은 너는 '특별법 제정!'의 뜰 광화문에서 그러나 아가야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줄기.. 2014. 7. 25.
대한민국은 지금, 팽목항 대한민국은 지금, 팽목항 권말선 100일 다 되도록 가라앉은 바다만 바라보며 기다림도 그리움도 눈물로 삭여야 하는 진도, 팽목항 ‘이게 나라냐’ ‘정부는 살인마!‘ ‘아이들을 살려내라’ 절박한 심정으로 외치며 걷던 한밤중의 진도대교는 또 하나의 팽목항 생때같은 자식 가슴에 묻고고통의 십자가 등에 지고곡기마저도 끊은 채 대통령의 대답을 요구하는광화문, 국회 앞도팽목항 왜 가라앉게 두었는가!왜 구하지 않았는가!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가! 4.16 수학여행 악몽 달래지 못한 어린 학생들 친구 잃은 이유 알고 싶어 단식 중인 부모님 응원하려 수업 끝나고 1박2일 안산에서 국회까지 걷고 또 걷는 그 길, 전부 팽목항 돈으로 하는 보상 아닌 참사의 진실 밝히라고, 그 누가 됐든 책임 있는 사람 확실히 책임 묻자고,.. 2014. 7. 15.
어느 날, 서명을 받으며 어느 날, 서명을 받으며 권말선 여학생 몇이서 조르르 몰려가다 글자 앞에 멈춰서더니 이름,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싸인까지 꼭꼭 눌러 적고는 예쁘장한 목소리로 “수고하세요.” 인사까지 한다. “고마워요.” 나도 웃으며 인사했지만 부끄럽고 죄스러운 어른의 고백 '미안해요’는 말하지 못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이거 하면 뭐가 나아지나?” 퉁명스레 물으시길래 조용히 “어르신 아이들이 배에 탔어도 그리 말씀하실 수 있으실지요?” 했더니 잠시 머뭇머뭇 거리다가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군.” 하신다. 신사 한 분이 와서 “정부가 다 조사하고 있는데 꼭 이런 거 해야 합니까?” 하셔서 “여당 의원들 팽목항에 내려가지도 않았다지요? 전문가와 가족 중심의 진상조사단이 꾸려져야 합니다.” 했더니 고개를 끄덕.. 2014. 6. 12.
육지에도 바닷바람 분다 육지에도 바닷바람 분다 ​ ​ 권말선 ​ 그 날 이후, 육지에서도 바닷바람이 불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잉잉 부대끼던 바람은 울며 울며 육지로 올라왔다 한 명 한 명 사연이 바다에서 건져질 때마다 바람은 또 통곡하며 몸부림쳤다 통곡하며 등을 때렸다 통곡하며 ​가슴을 쳤다 가슴에 노란 희망을 달고 남은 이들이여, 살아서 아니 주검으로라도 돌아오라, 꼭 돌아오시라 소원했다 초를 들고 허공에 그 이름을 불렀다 바람을 불렀다 울먹이며 흩어진 이름들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날 이후 육지에서도 바닷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잉잉 소리 내어 울었다 울며 등을 밀었다 몸서리치며 우는 바람을 달래려 어떤 이는 거리로 어떤 이는 바다로 달려갔지만 아직 그 바람 달랠 길 없다 ​ 아, 달랠 길이 없다 그저 잉잉 같이 울 뿐이다 바.. 2014. 6. 10.
연꽃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연꽃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권말선 얘들아, 미안하다 빨리 구조하라고 조바심만 칠 뿐 울며 화내며 지켜보기만 할 뿐 너희들 건져 올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 꽁무니만 빼는 못난 어른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구나 돈과 권력 무능과 탐욕 출세와 굴종 좌절과 비탄에 빠진 어른들이 득시글거리는 이런 나라 대한민국은 너희들에게 진흙탕이었구나 미안하다, 아이들아 선잠 쫓으며 학교에 졸음 참으며 학원에 마음껏 뛰어 놀 곳도 없이 책상에 묶인 채 어른들이 정해 놓은 어른들의 꿈만 쫓아야 했던 현실의 무게에 꾹 꾹 눌려 얼마나 힘들었니? 봄꽃 같이 찬란한 목숨들 한 잎 한 잎 떨어지고 나서야 너희들은 진흙탕을 뚫고 피는 연꽃이었단 것을 뼈아프게 확인한다 흙탕물이 없애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 그것이 너희들이었음을.. 2014. 4. 24.
침몰하는 박근혜號 침몰하는 박근혜號 ​ 권말선 세월호 침몰 일주일째, ​단 한 명의 추가 구조자도 ​ 없다. ​ 외국에서는 후진국이라 조롱하고 외신은 국내 언론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이​ 실종자 가족 위로는 못 할 망정 누구는 국민정서가 미개하다 하고 누구는 종북, 빨갱이, 선동꾼이라 하고 누구는 유언비어를 퍼트린다 하고 대통령 뺏지 달은 박근혜는 '처벌, 처벌!'만 외치며 몽둥이 들고 서서 누구든 제 대신 맞아 줄 사람 고르고 있다 그렇게 떠드는 이들 중 진심으로 어린 목숨들 걱정하는 이 있는가? 아이들 빨리 구조하자고 핏대 세우고 발 동동 구르는 이 있던가? 발견되는 시신의 피부는 조금 전까지 살아있은 듯 매끈했고 손톱은 빠지고 손가락은 부러졌다 ​얼마나 바들바들 매달렸으면 탈출하려 얼마나 긁어댔으면​ 심.. 2014. 4. 23.
고래의 꿈 고래의 꿈 -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우리 아이들 넋을 위로합니다. 미안합니다. 권말선 ​ 엄마, 두려움 잠시 잊고 가만히 눈 감은 채 꿈을 꾸듯 바다속을 여행할래요 짙고 푸른 바닷물이 되어 이 바다를 살짝 출렁이게 하고 싶어요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쓰다듬어 주세요​ 엄마, 일렁이는 물결 느껴지나요? ​ 어여쁜 한 마리 고래가 되어 친구들과 숨바꼭질도 할래요 산호 뒤에 숨고 모래 속에 숨을래요 보세요, 바다에서도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어요 용궁에도 다녀올게요 병든 용왕, 의뭉한 자라는 없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갔던 놀이동산처럼 꽃들이 나를 반기며 알록달록 웃고 있어요. 바다를 다 누비고 다녔더니 이제 저녁이 되었네요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 멀리서 들려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게요 따뜻하게 나를 안아 .. 2014.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