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권말선
[시] 한 끼 밥
전선에서
2025. 2. 17. 21:44
한 끼 밥
권말선
진공포장 기계에 밥을 준다 오늘 밥은 숙주다
네모난 비닐 밥그릇 속에
150g 때론 130g 그보다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게
일정한 리듬으로 쉬지도
않고 내미는 밥그릇 바삐
바삐 채운다 그릇 밖으로
삐져나가지 않게 요리조리
쉼 없이 마구 밀어 넣자면
숙주 허리 부러지는 똑 똑
소리 누군가의 한 끼가 될
차돌박이 숙주볶음 혹은
소고기샤브샤브 밀키트에
묶여 팔리기 직전 숙주가
내지르는 비명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다 내 허리도
찌릿찌릿 끊어질 것 같다
덩치 큰 기계에 매달려서
등허리 구부리며 무릎도
꺾어가며 호흡보다 더 더
빠른 속도로 몰아쳐대는
채찍질 같은 기계음 맞춰
부지런히 밥 다 먹여놔야
나도 겨우 먹고 살 수 있다
몇천 그릇 다 먹이고 나면
지쳐 떨어져 내 밥 한 그릇
챙길 기운 남지도 않지만
내일도 모레도 바삐 바삐
먹여야 한다 그래야 산다
한 끼 한 달 한 해 한 생 밥은 진땀으로 짓는 거구나

숙주(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