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에서 2014. 3. 4. 06:35

 

 

저녁 몽상


                  권말선


저녁 어스름
검푸른 하늘가
산 나무 가지가지
부채처럼 펼치울 때
나는 한 마리
손가락 벌레였으면

온 몸 한껏 내 뻗으며
가지 건너 가지
구물구물 구물대며
탐스럽게 굽이친
네 등줄기 같은 굴곡
울렁울렁 기어봤으면

부드럽게 솟은 잔가지
끝 타고 넘을 때
스르르릇 떨며
간지럼 타는 널
스르릇 떨면서도
아닌 척 지나봤으면

긴 밤 다 영글도록
네 등줄기 같은
네 목덜미 같은
산 그림자길
나만 아는 그 길
울렁울렁 넘어봤으면

 

 

(201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