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길
새로운 3차북미정상회담이냐 새로운 길이냐
<분석과 전망> 승리의 길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
김정은 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 인민의 최고 대표자'로서 '북의 최고 영도자'로서 한 말이다.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그렇게 연설을 한 것이다.
매우 주목된다. 북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이정표를 마련하려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라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굿 이너프 딜’ 즉, ‘북미가 합의할 수 있는 좋은 안’을 마련하려고 했던 한미정상회담도 성과 없이 끝나 난 뒤라 더욱 그렇다.
북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 핵기지 폐기를 내놓고 미국에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했었다. 단계적 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른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계산법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의 초기조치인 영변 핵기지 폐기에 군사 분야 조치를 제외한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른바, 미국식 대화법으로 북의 구상을 거부해버렸다. 미국식 대화법이란 미국의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운 것으로 핵은 물론 핵무기 폐기까지 포함하는 빅딜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했지만 마찬가지로 거절하고 말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재 해제 문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우선, 대북제재 문제가 북미대결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한 것과 결부된다. 대미협상탁에서 영변 핵기지 폐기에 조응시켰던 대북제재 해제 문제를 끌어내려와 자립적 민족경제에 조응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대북제재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결론적으로는 북이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가능케 할 북미대결전의 협상구도를 새롭게 짜겠다는 것을 예고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북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새롭게 짤 북미협상의 새로운 구도는 무엇일 것인가?
영변 핵기지 폐기는 여전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영변 핵기지 폐기가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한반도 비핵화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이기 때문이다.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서 그 초기 조치로 그만한 게 없는 것이다.
문제는 북이 영변 핵기지 폐기에 상응할 미국의 조치로 무엇을 요구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단서는 두 군데에서 찾을 수가 있다. 북 리용호 외무상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끝나고 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 그 하나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했다”고 한 대목이다. 미국의 국내정치 지형에 대한 배려였다. 또 하나 단서는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밝힌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구두로 약속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이 중에서 현실적으로 당장 돋보이는 것이 종전선언이다.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특히 구체적으로는 평화협정을 확정해준다는 점에서다.
이것들은 영변 핵기지 폐기에 조응할 미국의 상응조치가 경제적 대북제재 해제가 아니라면 정치군사적 조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두 약속은 주한미군 철수 언급과 더불어 미국 내 반북대결세력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북미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현 정세는 북미협상이 근본문제에 천착하지 않고서는 출로를 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미국은 경제적 제재 문제에서 군사안보문제로 이동해 북미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야하는 것이다.
조선신보는 14일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 천명된 사회주의강국 건설 구상'이라는 글에서 "조선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정책 철회 의지와 관계개선 의지,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고 밝혔다. 조선신보의 주장은 북이 '자력갱생'으로 제재 문제에 정면 대응한다면 미국은 비핵화 대가로 군사분야 등에서 보다 근본적인 체제안전 보장 조치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역시 "비핵화의 상응조치와 관련해 북한이 대북제재 해제에서 정치·군사 쪽으로 전략 수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새롭게 짤 북미협상의 새로운 구도는 이처럼 ‘영변 핵기지 폐기 대 평화협정 체결’이 될 것이다.
미국이 북의 요구대로 미국식 대화법을 접고서는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평화협정 체결 같은 방법론을 찾아 올 해 안에 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이정표를 세울 것인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북은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미국의 용단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새로운 전략을 준비해뒀을 것으로 보인다. 북이 시한을 ‘올해 안’으로 박은 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다.
새로운 전략이란 김정은 위원장이 올 신년사에서 언급한 이른바, ‘새로운 길’을 의미한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는 과정엔 북의 새로운 길이 무엇일지를 알게 하는 단서들이 엿보인다. 미국이 요구한 빅딜엔 핵 폐기는 물론 ICBM을 비롯해 대량살상무기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단한 함의를 갖고 있다. 자칫, 미국이 세계 비핵화와 세계적 범주의 군축을 하자고 제기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려면 북이 패전국이거나 핵개발 중인 나라여야한다. 현실은 북이 사실상 핵강국이며 ‘동방의 로켓강국’과 ‘군사강국’이라는 북의 주장도 정치수사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양탄일성을 실현한데다가 ‘공포의 균형’을 성립시키는 데에 관건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보유한 핵강국인 북에 핵과 핵무기 폐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버럭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2009년 5월 체코 프라하에서 주창한 세계 비핵화를 하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동방의 로켓강국’이자 ‘군사강국’으로 자처하는 북에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울러 세계적 군축을 하자는 것이 된다.
미국식 대화법이 갖고 있는 치명적 모순이다. 단순히 북미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데에 국한된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협상구도를 자칫 차원을 달리 하는 구도로 바꿀 수 있게 하는 대화법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올 해 안으로 영변 핵기지와 평화협정을 중심으로 하는 3차 북미정상회담에 응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신흥핵강국이자 전략국가인 북이 세계 최대 핵강국이자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을 상대로 세계 비핵화와 세계 군축 담판을 벌이는 새로운 북미대결전에 끌려들어가게 될 것인가?
오직, 미국에 달려 있다. 미국이 연착륙할 것인지 경착륙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다. 새로운 북미협상이든 새로운 북미대결이든 그것들은 다 70여년 지속되고 있는 북미대결전을 종식에 이르르게 하는 길이다. 승리의 길인 것이다.